아레오바고 광장에 서다 (행 17:21~34)

2016.04.03이재훈사도행전 17:21~34

아테네에 가득한 우상 앞에서 바울이 품은 거룩한 분노는 지혜로운 복음 전도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의 우상을 보며 같은 분노와 지혜를 품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 교묘해지는 우상

아테네는 철학과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고, 신전과 신상이 도시 곳곳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한 고고학자에 따르면 당시 공공 신상만 2만 5천에서 3만 개에 이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화려한 도시를 보고 감동하지 않고 우상으로 가득한 모습에 격분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면 미신은 사라져야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상이 오히려 더 교묘하게 감추어져 더 많아졌습니다. 최고의 지성과 최고의 미신은 통하는 데가 있어서, 유식한 사람은 우상을 유식하게 포장할 뿐입니다. 바울은 이 분노를 인간적인 감정으로 표출하지 않고 거룩한 지혜로 바꾸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단을 접촉점으로 (22-23절)

바울은 아레오바고 광장 가운데 서서 아테네 사람들을 종교적인 사람들이라고 존중하며 말을 열었습니다. 그는 두루 다니며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을 발견했습니다. 수많은 신을 섬기는 것은 결국 아무 신도 믿지 않는 불안에서 나온 것이었고, 혹시 모를 신을 위해 제단을 쌓아 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겸손한 흔적을 접촉점으로 삼아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내가 설명하겠다’고 말했고, 그들의 귀가 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며 복음의 접촉점을 찾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생활 속에서 상대의 익숙한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시고 우리와 가까이 계신 창조주 (24-28절)

바울이 알지 못하는 신으로 소개한 분은 온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갇혀 계시지 않으며,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실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옷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므로, 우리가 드리는 헌신조차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이 찾아 만나기를 바라시며 우리 각 사람과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고, 그분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존재합니다. 바울은 당시 시인들의 말을 빌려 제우스를 가리키던 표현을 참된 하나님을 증언하는 말로 바꾸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부활을 믿으라는 결단 촉구 (30절)

알지 못했던 시대는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신다고 바울은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며, 그 기준은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고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바울의 결론이었습니다. 아레오바고에서 어떤 사람은 비웃었고, 어떤 사람은 더 듣기를 원했으며, 믿은 이는 소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설교를 통해 아테네에서 믿는 이들이 일어났다는 것이 이 말씀이 맺은 열매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세상의 화려한 문명 앞에서 감동에만 머물지 말고, 그 속의 우상을 보며 거룩한 분노를 품읍시다.
  • 복음을 전할 때 상대가 익숙한 말과 삶 속에서 접촉점을 찾읍시다.
  • 하나님을 도와드린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돌려드립시다.
  • 하나님은 우리와 멀리 계시지 않으니, 삶 속에서 그분을 더듬어 찾고 가까이 나아갑시다.
  • 죄를 회개하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결단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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