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눈멀고 귀먹은자들
하나님은 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여호와의 종을 세우셨지만,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해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형식에 머물지 말고 본질과 진리를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시다.
여호와의 종과 불순종한 종, 두 종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귀한 이름 가운데 하나는 종입니다. 종은 주인이 있어야 성립하는 말이며, 내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순종하며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서는 이 종을 여호와의 종이라 부르며, 하나님이 붙드시고 택하시고 기뻐하시며 성령을 부어 주신 종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종은 온 인류를 구원할 고난받은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이와 달리 주인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 징계를 받는 또 다른 종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셨으나 반항하고 오만했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육신의 눈과 귀가 아닌 영적인 소경과 귀먹음
본문의 소경과 귀먹은 자는 육신의 눈과 귀가 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육신으로는 보고 듣지만 영적으로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을 뜨고 귀를 열어 보고 들으라고 명하십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들었다고 해서 지혜롭거나 유식하거나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오래 살고 많이 배우고 경험이 많아도 껍데기만 듣는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과 핵심이며, 많은 이야기보다 하나의 진리를 똑똑히 듣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을 경계합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사람보다 가까이 있으면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이 더 위험합니다. 교회에 수없이 다니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행사에 다 참여해도 진리에 이르지 못하면 헛것을 보고 헛것을 듣는 것이며, 그렇게 보낸 세월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 18절은 총명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택함을 받고 언약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것을 축복의 도구로 쓰지 않고 형식적인 종교로 만들었습니다. 신약의 바리새인과 서기관, 대제사장들도 말씀과 성전을 독점했지만 진정한 거룩과 진리가 없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소경된 인도자라고 부르셨습니다.
도적과 탈취, 굴과 옥에 갇힌 비극의 역사
본문은 이 백성이 도적을 맞고 탈취를 당하며 굴속에 잡히고 옥에 갇힌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 명성을 쌓고 건강을 지켜도 어느 날 도적 맞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재산이 약탈되고 도시가 폐허가 되었으며, 부녀자와 아이들이 끌려가 운신의 폭이 줄어든 채 70년을 살았습니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건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심판의 고난을 해석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고난 자체보다 고난이 해석되지 않는 것이 더 큰 고난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면 징계도 축복이 됩니다.
고난의 해석과 회개로 돌아설 때
이사야는 이 고난이 무엇인지, 왜 주어졌는지 묻습니다. 본문은 그 고난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강대국을 심판의 도구로 쓰셨고,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불길이 사방을 불살랐습니다. 그런데도 백성은 몸은 불타면서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영적 오만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내부를 성찰하고, 죄와 율법에 대한 불순종을 돌아보며 거품을 걷어내야 합니다. 누가 공격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바꾸고 낮은 자세로 회개할 때 힘이 생깁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말씀의 본질과 핵심을 붙잡읍시다.
- 지금의 고난과 우리 삶을 하나님 앞에서 해석하고 돌아봅시다.
- 교회 안에서 형식에 머물지 않고 영적으로 보고 듣는 신앙으로 나아갑시다.
- 우리 안의 거품을 걷어내고 낮은 자세로 겸손히 회개합시다.
-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도록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투명하게 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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