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다윗의 애가
사울의 죽음 앞에서 다윗이 애통하며 보여준 것처럼, 역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다스림에 순종하며 원수까지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역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역사는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사무엘하는 사울이 죽은 후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이면서 새로운 시대의 출발입니다. 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아가 은혜의 시대를 열었고, 여호수아가 죽은 뒤 사사기는 어두운 시대로 들어갔으며, 엘리의 죽음은 사무엘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군대와 권력과 지도자가 역사를 움직인다고 보지만, 그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대를 살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의 선택과 하나님의 선택은 다릅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왕을 달라고 요구했는데, 그 이유는 사무엘이 늙었고 그의 아들들이 타락했으며 열방의 왕 제도를 따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를 더 물리칠 수 없어 사울을 허락하셨고, 사울은 사람이 원하는 기준에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사울은 키가 크고 준수했지만 제멋대로이고 과대망상적이었으며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양을 치던 목동으로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마음의 기준으로 택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장 26절의 말씀처럼 세상의 약하고 천한 것을 택하셔서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사울의 죽음 앞에서 다윗은 금식하며 애통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옷을 찢고 저녁때까지 슬퍼하며 울고 금식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치라고 하신 아말렉을 치지 않았는데, 그 아말렉 사람의 손에 의해 죽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를 죽이지 않았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인 아말렉 사람을 처형했습니다. 악인은 결국 악인의 손에 의해 죽고 스스로 무너지며, 선인이 악인을 직접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며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다윗은 사실을 숨기지 않고 사랑을 담아 애가를 불렀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기리는 애가를 지었는데, 그 노래는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전합니다. 그는 이 소식을 가드와 아스글론 거리에 전하지 말라고 하며 이스라엘의 수치가 원수들에게 기쁨이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요나단을 향해서는 그의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깊었다고 고백하며 신앙 안에서 나눈 깊은 우정을 표현합니다. 다윗은 비극을 합리화하지 않고 눈물과 애통, 회개와 금식으로 응답했습니다. 교회와 믿는 자들의 수치스러운 역사도 하나님은 우리를 교훈하시는 자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실패와 시련 가운데서도 이어집니다
다윗의 생애는 늘 화려하지 않았고, 밧세바 사건으로 큰 시련과 수치를 겪었습니다. 그의 가정에도 아픔이 이어졌고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싸우다 죽었으며, 다윗은 그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이루어집니다. 성경이 이런 뼈아픈 실수들을 기록한 이유는 우리가 남은 생애를 이들처럼 살지 말라고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사람의 기준과 방법보다 하나님의 선택과 다스림에 먼저 순종합시다.
- 권력과 재물과 영향력이 커질수록 더 겸손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합시다.
- 하나님이 맡기신 권위를 자기 편리를 위해 쓰지 말고 사랑과 섬김으로 사용합시다.
- 원수를 갚지 말고 사랑과 용서로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붙듭시다.
- 우리의 비천함과 약함을 염려하지 말고 주님을 향한 신실한 마음으로 드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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