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암 2:9~16)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베푸신 은혜를 잊고 구별됨을 포기한 죄를 심판하십니다. 죄는 우리를 짓누르고 무능하게 하며 수치스럽게 하므로, 택함받은 정체성을 지키며 세상의 유혹에 No라고 말해야 합니다.
죄를 지적하시기 전에 은혜를 상기시키십니다 (9-11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시기 전에 너희가 받은 은혜를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첫째, 백향목처럼 키가 크고 상수리나무처럼 튼튼한 아모리 사람을 위에 맺힌 열매부터 아래 뿌리까지 진멸하셨습니다. 둘째,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 40년 광야를 인도하시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셋째, 예언자를 세워 계속 말씀하시고 젊은이 가운데 나실 사람을 세워 택한 백성으로 구별하셨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주지 않은 귀한 말씀을 이스라엘에게만 주셨습니다.
그러나 구별됨을 버리고 말씀을 막았습니다 (12절)
은혜를 입은 백성이었으나 그들은 나실 사람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예언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나실 사람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한 것은 스스로 구별됨을 포기하게 한 일이며, 택함받은 백성이 거룩을 더럽힌 것입니다. 성도란 외적으로 거룩한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아 세상과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은 분명한 정체성이 있어야 세상의 손짓에 No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No라고 할 줄 모르는 크리스천이 너무 많습니다.
회개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일
예언자의 입을 막은 것은 거룩을 포기하는 선을 넘어 하나님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오늘도 성경만 유일한 진리냐며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고, 크리스천 가운데도 회개하라는 말씀을 거북해하며 귀를 막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34절에서 보낸 예언자와 지혜로운 사람들을 죽이고 핍박하는 현실을 탄식하셨습니다. 이는 복음을 막는 성령 훼방죄이고, 선지자와 사도의 일을 막는 업무 방해죄입니다. 또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구별하셨는데 구별을 포기했으니 직무유기죄입니다.
죄의 결과는 눌림과 무능과 수치입니다 (13-16절)
하나님은 곡식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땅을 짓누르듯 너희를 짓누르겠다고 하십니다. 자유를 얻으려고 지은 죄가 오히려 우리를 더 짓누르는데, 다윗도 시편 32편에서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 뼈가 녹아내리고 원기가 빠졌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빨리 달리는 사람, 힘센 사람, 용사, 활 쏘는 사람, 말 탄 사람도 자기 목숨을 구하지 못하니, 죄는 우리를 무능하게 합니다. 굳센 용사도 벌거벗은 채 도망치듯 죄는 수치를 줍니다. 아담과 하와도 범죄한 뒤 몸을 가리려 했으며, 사람은 수치를 감추려고 또 다른 죄를 반복합니다.
구별됨을 회복하고 No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러한 죄의 결과가 있기에 우리는 구별됨을 회복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 서서 날마다 영혼이 하나님 안에 바로 서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탄의 몸짓과 유혹과 세속적인 끌림에 No, I'm sorry, I'm a Christian이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죄에 눌려 무능과 수치 가운데 헤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살도록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굵직한 은혜 세 가지를 찾아 기억합시다.
- 그 은혜에 대해 나는 '그러나'로 살았는지 '그러므로'로 살았는지 돌아봅시다.
- 택함받은 자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의 유혹에 No라고 말합시다.
-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에 귀를 막지 말고 말씀 앞에 날마다 섭시다.
- 내가 No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며 구별된 삶을 지킵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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