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선을 위한 고난 (벧전 3:13~22)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시되, 선을 위한 고난을 통해 우리를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으시고 그 고난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위한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감당해야 한다.
고난이 있다고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고난이 있으면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거나 기독교 신앙이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고난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 논리입니다. 이 생각의 밑바닥에는 고난은 인간에게 최악의 일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치 않고 싫어할 뿐입니다. 죄와 악으로 인한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선과 의를 위한 고난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데서 오는 흔치 않은 고난입니다. 고난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악하시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그 자유를 통해 우리를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신 증거입니다.
선을 위한 고난은 복이고 하나님의 뜻이다 (13-14절)
베드로는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7절도 하나님의 뜻이면 선을 행하다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악을 행하다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선을 위한 고난은 복된 것이며, 은혜이고, 우리를 향한 부르심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선한 성품은 고난을 통해 빚어진다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시련 없이 인내를 경험할 수 없고, 위험에 맞서지 않고 용기를 개발할 수 없으며, 문제와 딜레마 없이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하나님은 선택의 시험을 통해 선한 양심과 선을 택하는 기능을 개발하게 하십니다. 고난이 크고 깊을수록 선함이 깊어질 수 있는 기회이며, 도자기가 뜨거운 가마에서 견고하게 구워지듯 고난이 뜨거울수록 하나님의 선이 우리 안에 깊이 형성됩니다.
고난 중에도 소망을 증거하는 삶 (15-16절)
베드로전서 3장 15-16절은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준비를 하고, 온유와 두려움으로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억울한 고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악을 선으로 갚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불러일으키며, 그 순간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는 기회가 됩니다. 적당히 살면 고난이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며, 선을 행하는 고난이든 죄로 인한 고난이든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부활의 능력은 선을 위한 고난 속에서 체험된다 (18절, 21절)
그리스도께서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사람을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셨고, 그 고난 뒤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은 복음이 전해지는 데 필요한 고난이 우리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뻐하며 그 고난에 참여할 때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체험됩니다. 선을 위한 고난은 억울함으로 끝나지 않으며, 부활의 새 생명은 날마다 우리의 양심을 선하게 하여 하나님을 향해 담대하게 응답하게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선을 행하다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감당합시다.
- 고난을 자초해서라도 복음이 전해지는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그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할 준비를 합시다.
- 죄로 인한 고난과 타협하지 않고 선한 양심을 지켜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합시다.
-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의 성품에 이루어지도록 날마다 기도하며 고난을 통과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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