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난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순종하는 믿음이며, 아직 완전하지 않은 믿음이 말씀과 성령 안에서 자라 가고, 이미 약속된 미래를 바라보며 나그네로 살아가는 종말론적 믿음입니다.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믿음은 마음과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8절)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떠났습니다. 목적지를 알아야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마음 깊이 순종하고 결단했습니다. 명령의 내용은 이성과 상식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명령을 보면 어렵고 하나님을 보면 쉬워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령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로 말씀하셨듯이, 말로만 대답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뜻을 돌이켜 실제로 순종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이 문단의 요지)
부르심이 믿음의 근거이며 신앙은 떠남에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고, 부름이 있기에 응답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부르신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며, 교인이 되는 자격도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하셨습니다. 신앙은 떠나는 데서 비롯되는데, 많은 신자들은 현재를 보호받고 안주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잘못된 현재를 부인하고 세상적 행복관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불편하지만, 신앙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이 문단의 요지)
믿음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며 점진적으로 자랍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이방 세계에서 자랐고, 여호수아 24장 2절에 따르면 그의 조상들은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대략 75세에 행동을 옮겼고, 그 이전의 오랜 세월을 하나님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1장 31절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 친척을 떠나지 못하고 데라와 함께 떠났다가 하란에 머물렀고, 그곳에 약 10여 년 동안 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25년 동안 용기와 인내로 기다려 주셨고, 마침내 아브라함은 독생자 이삭을 바칠 믿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만들어지며 시간과 함께 성숙합니다. 그 성장의 힘은 성령과 말씀입니다. 나를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볼 때 불완전한 믿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이 문단의 요지)
미래의 약속을 미리 보는 믿음이 나그네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8-10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습니다. 그는 믿음의 눈으로 약속의 땅과 영원한 나라를 미리 보았습니다. 기독교의 미래는 내가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나를 향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외국 땅에서 나그네처럼 천대를 받으면서도 장막을 치고 살 수 있었습니다. 약속이 분명하면 고생이 무섭지 않습니다. 천국이 분명하면 현실이 결코 고달프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가 전쟁이 일어나도 안연하리라 고백한 것도 이런 종말론적 신앙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환난과 답답함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이 문단의 요지)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으로 순종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정합시다.
- 내 여건을 보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순종합시다.
- 잘못된 현재와 세상적 행복관에서 떠나기로 결단합시다.
- 불완전한 믿음을 탓하지 말고 말씀과 성령 안에서 날마다 믿음을 새롭게 합시다.
-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나그네의 삶을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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