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누우셨던 자리를 보라 (막16:1-11)

2012.04.08이재훈마가복음 16:1-11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고 돌문이 열려 있었다는 사실은 부활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이 빈 자리를 볼 때 우리는 부활의 몸과 주님의 약속을 믿고, 두려움과 슬픔을 넘어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게 된다.

부활의 놀라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vv. 8-11)

제자들은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고, 여인들의 증언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무덤이 비었는데도 그들은 두려워하고 의심했습니다. 이 역설적인 반응이 오히려 부활이 사실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부활에 너무 익숙해져 매너리즘에 빠졌습니다. 세상이 놀라지 않는 이유는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의 얼굴에 놀람과 두려움, 충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기쁨과 능력 이전에 이 사건의 놀라움이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첫 증인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여인들이 무덤으로 갔습니다. 당시 십자가 처형된 죄수는 수습하지 않고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자신의 돌무덤에 안치했기에 여인들은 그 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는 여인의 증언을 법정에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복음서가 여인들을 첫 증인으로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이 후대에 꾸며낸 이야기였다면 결코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히려 부활의 사실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돌문을 열어 주십니다 (1-4절)

여인들은 무덤 돌문을 누가 굴려 줄지 걱정하며 나섰지만, 이미 돌문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천사가 돌을 굴려냈습니다. 그 목적은 예수님이 밖으로 나오도록 돕기 위함이 아니라, 제자들이 주님이 누우셨던 자리를 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군병을 세워 지키게 했지만, 하나님이 문을 여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사람의 힘으로 열 수 없는 마음의 돌문을 열어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증거가 아무리 분명해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믿을 수 없고, 성령께서 열어 주셔야 믿게 됩니다.

부활한 몸과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6-7절)

천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부활은 영혼만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죽으셨던 그 몸이 전혀 새로운 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2-43절에서 이를 씨앗과 식물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씨앗이 썩어 새로운 식물이 나듯, 현재의 몸이 변하여 부활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충실히 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예언하셨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오실 약속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빈 무덤을 보고 달려가 증거합니다 (10절)

여인들은 무덤 앞에서 두렵고 놀랐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발걸음이 힘차게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슬피 울던 제자들에게 달려가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도 절망한 성도들에게 주님이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권면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빈 것처럼 우리의 무덤도, 우리 인생의 어두운 상황도 끝이 있을 것입니다. 빈 무덤을 보는 자는 부활을 증거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부활 앞에서 놀라움과 두려움을 회복하며 부활절을 맞이합시다.
  • 마음의 돌문을 여시는 하나님께 간구하며 부활의 증거를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
  • 현재의 몸과 삶을 사랑하고 충실하게 살아갑시다.
  •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 달려가 부활의 소식을 전합시다.
  • 장애우주일을 맞아 중고 물품을 기증하며 사랑을 나눕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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