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하나님을 정말 아십니까? (요일 2:1~11)
정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려 애쓰고, 미움 대신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이는 변호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는 용서와 은혜에서 흘러나오는 열매입니다.
알려 하지 않는 두 극단을 넘어서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알려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까요, 다 아는 사람일까요?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이 질문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몰라서,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여겨서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지 못하거나,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해 더 알려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요한일서는 이 두 극단을 피하고 참되게 알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하려고 기록되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3절은 믿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졌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가 '안다'이며, 특히 2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나는 하나님을 정말 알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머리의 지식을 넘어 마음과 체험의 지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식에는 머리의 지식과 마음의 지식이 있습니다. 머리에 지식이 가득해도 마음에 쌓이지 않으면 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구경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머리만 주시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주십니다. 예레미야 24장 7절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지도를 보고 아는 것과 두 발로 땅을 걸으며 아는 것이 다르듯, 정보로서의 지식과 체험으로서의 지식도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경건의 모양이 있는 지식과 경건의 능력이 있는 지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당시 많은 성도가 모양으로서의 지식에는 이르렀으나 능력으로서의 지식에는 이르지 못했기에, 요한은 그들에게 참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덮어씌우는 심판자가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하시는 분입니다 (1-2절)
정말 하나님을 아는 성도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요한은 1절에서 죄를 짓지 않도록 편지를 쓴다고 말하면서도,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고 덧붙입니다. 죄를 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지만, 성도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함이 있음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잘 걸렸다며 형벌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그 방법은 1장 9절이 말하듯 죄를 자백할 때 주시는 용서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자 우리의 변호자이십니다.
값없는 용서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장발장이 변화된 것도 채찍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진 용서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미국 찰스턴의 흑인 교회에서 총기 난사로 아홉 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법정에서 가해자를 향해 찢어질 듯 아프지만 당신을 용서하며 하나님의 자비가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가해자는 회개하지 않았지만, 그 용서를 전한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라고 믿습니다. 십자가의 강도도 함께 예수님을 모욕했으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시는 것을 듣고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죄를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확실히 치른 공의로운 용서이며, 그 용서를 담당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격려와 응원이 죄에서 돌이키는 힘이 됩니다
율법이 죄를 짓지 말라고 명령한다면, 사람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은 용서와 자백,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명령만 하는 부모보다 격려하고 응원하고 환경을 마련해 주는 부모가 자녀를 변화시킵니다. 한 연구에서 보충수업이 효과가 없었는데, 유일하게 향상된 여학생의 교사는 열심히 하라고 말하지 않고 경기 때 힘껏 응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응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기까지 사랑하셨으며, 그 사랑이 부어질 때 변화된 삶을 살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책망과 징벌만 하시는 분으로 알면 우리는 겉으로만 행하는 척하게 되지만, 용서와 격려를 경험한 성도는 마음으로부터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계명을 지킴은 은혜의 열매이며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3-6절)
요한은 3절부터 6절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정말 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이며 진리가 그 안에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 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 1, 2절에 주어진 은혜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자백을 통한 용서, 격려, 응원, 변호자 되신 그리스도를 체험할 때 우리는 율법의 의무감을 넘어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기뻐하며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을 아는지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미움을 떠나 사랑하는 것이 빛 가운데 있다는 증거입니다 (9-11절)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 어둠 속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미움은 본능이지만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용서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기 전에 자기 자신이 어둠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에 거하는 길입니다.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은 옛부터 주어진 계명이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해졌기에 새 계명입니다. 미움은 의무감으로 극복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의 체험, 변호자의 끊임없는 역사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생명은 열매를 맺으니 죄를 멀리하고 사랑으로 향해야 합니다 (5절)
요한은 5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며, 이로써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고 다시 말합니다. 내 마음에서 미움이 제거되고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면 하나님을 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극적으로는 죄를 멀리하고, 적극적으로는 미움이 아닌 사랑을 향해 가는 것, 이 두 열매가 하나님을 정말 안다는 증거입니다. 생명은 반드시 열매를 맺으며, 그리스도 안의 새 생명의 은혜는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죄를 지을 때마다 변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자백하여 그분의 용서를 누립시다.
- 머리의 지식에 그치지 않고 말씀을 삶에서 체험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아 갑시다.
- 나를 해친 사람이나 미워하는 형제를 하나님의 용서 안에서 용서하기로 결단합시다.
- 하나님의 계명을 의무가 아니라 은혜에 힘입어 기쁨으로 지키기를 힘씁시다.
- 날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행하며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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