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예수님은 불법 재판과 채찍, 조롱을 당한 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가셔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수치와 저주로 끝나지 않고 구원의 십자가가 되었으니, 우리는 무감각하게 십자가를 대하지 말고 감동과 회개로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
예수님은 밤새 시달리고 채찍을 맞아 기진맥진하셨고, 골고다로 가는 길에서 쓰러지셨습니다. 로마 병정은 구경하던 구레네 시몬을 억지로 세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습니다. 시몬은 이 일을 재수 없고 억울한 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이 일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사건이 됩니다. 시몬은 그 뒤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로마서 16장 13절에 나오는 루포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로 그의 가정이 구원받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억지로 주님께 붙들린 삶도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해골 같은 골고다에서 못 박히심 (32-34절)
예수님은 해골이라는 뜻을 가진 골고다에서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해골처럼 생긴 그곳은 가장 저주받은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이 쓸개 탄 포도주를 권했지만 예수님은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시편 69편 21절의 말씀이 응답된 것이며, 인류의 모든 고통을 몸소 감당하신 모습입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잔인하고 치욕스러운 형벌이었고, 보통 사흘 가까이 고통을 겪다 죽었지만 예수님은 아홉 시에 못 박혀 오후 세 시에 운명하셨습니다. 복음서는 이 모든 고통을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짧은 한마디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옷과 모든 것을 빼앗기신 예수님
예수님은 육체만 착취당하신 것이 아니라 가지신 모든 것을 빼앗기셨습니다. 죄수의 옷은 당시 군인들의 합법적인 부수입이었고, 겉옷과 신발, 허리띠까지 나누어 가졌습니다. 속옷은 통으로 짜여 있어 찢을 수 없었으므로 네 사람이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가졌습니다(요한복음 19장 23-24절). 로마 병정들은 죄 없는 예수님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감동 없이 무감각하게 서 있었습니다. 박물관을 지키는 사람이 지겨운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도 감동 없이 십자가를 노래하고 장식품처럼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두 강도 사이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두 강도 사이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 창녀와 세리, 병든 자와 약한 자들과 함께하셨고, 돌아가실 때도 최악의 죄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두 강도 모두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한 강도는 끝까지 조롱했고, 다른 강도는 그를 꾸짖고 예수님께 나를 기억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는 예수님, 회개하지 않는 교만한 강도, 회개하는 강도라는 세 모습으로 전 인류의 영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그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무감각과 조롱이 드러내는 십자가의 능력 (39-44절)
지나가던 사람들과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모가 성공했다는 기쁨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치와 파멸과 저주로 끝날 것 같았던 십자가는 하나님이 축복과 영광의 십자가로 바꾸셨습니다. 십자가는 감추어지지 않고 거짓과 어둠을 드러내며, 사람의 양심을 비수처럼 찌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돌을 던졌던 것처럼, 십자가 앞에서 마음을 닫는 것이 가장 큰 위기입니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반지와 스티커로 장식하면서도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십자가가 아닙니다.
삶에 적용하기
- 십자가 앞에서 무감각해지지 않고, 찬송할 때마다 감동과 눈물로 주님을 만납시다.
- 십자가를 장식품으로만 두지 말고 삶 속에서 죄를 끊고 십자가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 예수 믿음으로 손해와 억울함을 당할 때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축복으로 받아들입시다.
- 나를 대신해 짐을 지신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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