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Again 1907_설교
진짜 부흥은 위기 속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내면을 정직하게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때 일어납니다. 또 순교와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교회가 연합하여 세상을 섬기고 나눌 때 부흥이 이어집니다.
부흥은 위기 속에서 찾아옵니다
1907년은 을사보호조약에서 한일합방, 3.1운동에 이르는 한국 근대사의 가장 처절하고 위기스러운 때였습니다. 그 어두운 시기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렵다고 말하지만, 나라를 빼앗기고 6.25 전쟁을 겪던 그때와 비교하면 행복한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좋은 환경에 있을 때는 그 좋음을 잘 모르고 불평하고 비교하고 경쟁하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죽음 직전에 섰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축복해 주셨습니다. 절망은 희망을 부르고, 위기는 부흥을 부릅니다.
값싼 부흥을 버리고 정직하게 돌아갑시다
부흥이라는 단어가 유행이 되면서 값싼 부흥을 추구할 위험이 있습니다. 양적이고 눈에 보이며 형식에 맞는 부흥, 가슴을 찢는 내면의 회개와 자복이 없는 숫자 중심의 부흥은 진짜가 아닙니다. 교인의 반이 빠져나간 것을 부흥으로 본 목사의 이야기처럼, 거품은 아무리 많아도 진실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우리의 내면과 현실을 정직하게 보고, 겸손하게 우리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손을 들어주시고 기름을 부으시며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필요할 때마다 부흥을 주셨습니다.
부흥의 대가는 순교와 희생입니다
1907년 부흥보다 40년 전, 평양 대동강변에서 토마스 선교사가 26살의 나이로 참수당했습니다. 그는 죽음 직전에 자신을 죽이는 사람에게 성경책을 건졌고, 그 사람이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조카도 예수를 믿으면서 교회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사건이 1907년 평양의 성령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모든 부흥은 순교자를 필요로 합니다. 초대교회는 스테반의 죽음 위에 세워졌고, 한국교회도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진정한 부흥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연합하여 협력할 때 부흥이 일어납니다
1907년의 부흥은 외국 선교사들의 눈물과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언더우드, 알렌, 하디 같은 선교사들이 한국을 위해 헌신했고, 그 결과 우리는 교육, 의료, 근대화, 여성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부흥은 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 일어납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와 교회, 교파와 교파가 경쟁 관계에 있어 부흥이 어렵습니다. 진짜 부흥의 핵심은 연합입니다. 작은 일도 하나가 되면 큰일이 되고, 커도 분열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번 부활절에 NCC와 한기총이 함께 집회를 연 것이 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받는 부흥에서 나누는 부흥으로
시대마다 부흥의 코드는 달랐습니다. 1960년대는 가난과 질병, 1970~80년대는 성공이었지만, 이제 세상이 교회에 요구하는 것은 도덕성과 인격, 양심입니다. 세상은 교회의 권위주의와 교권주의, 물량주의를 거부하고, 교회가 겸손하게 섬기고 화해자가 되며 민족의 양심이 되기를 원합니다. 과거에는 한국이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세계를 도울 나라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받는 데 있지 않고 나누는 데 있으며, 복음이 닿지 않은 곳으로 나가 희생하는 데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겉으로 드러난 숫자보다 먼저 우리 내면을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 교회와 교파의 경쟁을 내려놓고 서로 협력하는 하나 된 교회가 됩시다.
- 복음을 위해 나를 포기하고 희생할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합시다.
- 받기만 구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며 세상을 섬깁시다.
- 부흥의 불씨 하나를 가슴에 품고 꾸준히 기도하는 자리를 지킵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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