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왜 십자가인가 (고전 1:18-25)
십자가는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되지 않는 어리석어 보이는 사건이지만, 죄의 덫에 걸린 인류를 건지는 하나님의 굿뉴스입니다. 자격 없이도 예수님께 나를 맡기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밴뉴스 속에서 기다리는 굿뉴스
우리는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 가운데 대부분이 밴뉴스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위로하는 굿뉴스를 기다립니다. 말기 암 환자에게는 나을 수 있다는 소식이, 사형수에게는 사면의 소식이 굿뉴스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굿뉴스를 더 기다리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선고 아래 놓인 인류에게 가장 큰 굿뉴스는 무엇이겠습니까? 죽음의 덫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며, 그 굿뉴스의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갈라지는 두 반응 (18절)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사람은 두 부류로 갈라집니다. 한 부류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죄, 죽음, 천국, 지옥 이야기를 걷어치우라고 합니다. 다른 부류는 살 길이 있다는 말을 믿고 귀를 기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가 이 두 반응을 대표합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을 조롱했지만, 다른 강도는 자기의 미래를 예수님께 부탁했고 예수님은 그에게 오늘 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강도는 아무 자격이 없었지만 예수님께 자기 영혼을 맡겼기 때문에 부탁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구원 소식입니다. 누구든지 인종, 학문, 교양과 관계없이 예수님께 나와 자신을 맡기면 받아주십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풀 수 없는 문제 (19-20절)
하나님은 지혜로운 사람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사람의 총명을 제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 가장 발달했던 20세기에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가장 끔찍한 학살을 경험했습니다. 지식과 지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분노, 갈등, 반목, 다툼, 분열을 인간 스스로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며, 내 문제를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자녀가 문제를 숨기다 감당하지 못할 때에야 부모에게 가져오듯, 우리도 일찍 하나님께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의 인식능력과 분별력으로는 세상을 살 수 없으며,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아빠라고 부를 때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어 보이는 방식으로 구원하신다 (21절)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세상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어리석게 보이는 말씀 선포를 통해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유대인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표적을 구했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았지만, 기적을 본 사람은 더 큰 기적을 요구할 뿐이고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돈이 들지 않으며, 가짜만이 대가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을 내어주셔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고, 그 사랑과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책감에 묶일 이유가 없고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옵시다.
- 자격과 상관없이 예수님께 나를 맡기는 믿음을 가집시다.
-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고 십자가로 이루어진 자유를 선포합시다.
- 아버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가까이 계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세상 가운데서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며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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