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신년 특새 39일차-가나안 땅의 미래 주인(창14:1-16)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세상 권력이 약속의 땅을 침범해도 그 약속을 지키시며, 그 부르심을 받은 백성은 두려움을 넘어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구원은 하나님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말은 내가 무엇인가를 받았다는 뜻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구원은 내 존재가 그대로인 채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나라, 우상의 나라, 나 자신의 나라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내가 선택해 다니는 곳이 아니라 내가 바로 교회이며, 이 시각의 차이가 신앙생활을 바꿉니다. 부르신 분이 계시기에 우리에게는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갈 책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스케일이 커진 것은 약속이 이뤄지는 증거입니다 (1-3절)
동방의 강대국 연합군이 가나안 남부 도시국가들을 치러 내려왔습니다. 이들은 12년 동안 조공을 바치던 그돌라오멜을 13년째 반역한 도시국가들을 응징하러 14년째 원정을 떠났습니다. 성경이 아브라함의 생애 기록에 여러 나라의 전쟁을 담고 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존재감이 역사 속에서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창대하게 하리라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창세기 12장 1-3절이라는 마스터키로 읽어야 합니다.
정복군의 발자국 아래 임한 하나님의 심판 (5-12절)
북방 연합군은 요단 동편의 족속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광야 근처 엘바란까지 내려갔고, 다시 가데스와 아말렉, 아모리 족속의 땅까지 휩쓸었습니다. 상대만 골라 치지 않고 땅 전체를 초토화한 것은 그만큼 군사력이 강했다는 뜻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왕들은 시딤골짜기 역청 구덩이를 방패 삼아 맞섰지만 결국 그 구덩이에 빠졌고, 소돔과 고모라의 물건과 양식이 빼앗기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사로잡혔습니다. 창세기 10장 19절은 소돔과 고모라가 노아의 후손이 살던 지역이었음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더 악한 자들을 통해 악을 심판하시되, 그 도구로 쓰인 자도 결국 심판하십니다.
두려움을 넘어선 아브라함의 용기 (14-16절)
아브라함은 조카가 사로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훈련받은 사람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습니다. 그는 헤브론의 안전한 산지에 있었으니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 종들을 나누어 적을 쳐부수고, 다메섹 북쪽 호바까지 추격해 물건과 롯, 부녀자와 사람들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애굽에 내려갈 때 아내를 누이라고 말할 만큼 두려워하던 아브라함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그 변화는 하나님이 이 땅을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붙잡은 믿음에서 왔습니다.
부르심을 따라 사는 자는 담대합니다
가나안 땅은 남쪽 애굽으로 대표되는 세상 권력과 북쪽 메소포타미아의 권력 사이에 낀 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땅을 보호하셨고, 약속의 땅을 침범하는 세력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도전으로 다루셨습니다. 세상 나라와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나라를 침범하면 하나님은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세상 권력 앞에 벌벌 떨던 사람이 아니라 약속을 붙잡고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담대하고, 약속과 함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세상의 풍요로움보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기준으로 선택합시다.
- 가정과 가족 관계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합시다.
- 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불러냄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기억합시다.
- 실패 가운데서도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예배합시다.
-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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