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눅 5:27~39)
하나님의 은혜는 종교적 울타리 안에 한정되지 않으며,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을 찾아가 제자 삼고 품으셨습니다. 교회도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품는 새 포도주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종교적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돈, 지식, 외모, 직업, 가문 같은 기준으로 서로를 차별하고, 종교조차 사람을 가르는 도구가 되곤 합니다. 많은 불신자들은 하나님도 교회를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신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어보면 그것은 심각한 오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했던 이들에게 예수님은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시고, 그들에게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 (27-29절)
예수님은 로마에 협력해 동족에게 세금을 착취하던 세리 레위, 곧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세리는 이방인보다 더 악하게 여겨져 하나님의 은혜에서 절대 제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과 식사하는 것조차 거룩을 해치는 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부에 이어 두 번째 제자 그룹으로 세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레위는 자기 집에 세리들을 모아 큰 잔치를 열었고, 이것이 최초의 맞춤 전도 집회였습니다. 세리들의 죄가 가볍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제자로 불러 회개시키셨습니다.
의사이신 예수님은 병든 자를 품으십니다 (30-32절)
바리새인들이 세리, 죄인과 어울린다고 비방하자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답하셨습니다. 죄인은 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병든 사람이며, 의사이신 예수님이 가면 고쳐질 수 있습니다. 의사가 병자를 만나지 않고서는 병을 고칠 수 없듯이,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시되 전염되지 않고 고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병자이며, 교회에 출석한다고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닙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도 아직 병원에 오지 못한 병자들입니다.
은혜는 허물이 있어도 끌어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그를 먼저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도 냄새나는 양을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은혜란 상대가 깨끗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허물이 있는 그대로 먼저 품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배제받는 것은 세상을 끌어안지 않고 우리와 다르면 멸망받을 자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겨야 합니다 (33-39절)
금식 질문에 예수님은 신랑과 신부의 비유로 답하셨습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잔치의 기쁨이 본질이며, 그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또 낡은 옷에 새 옷 조각을 대지 않고,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에서 생겨난 문화와 제도를 절대시하면 복음은 그 안에 갇히고 맙니다. 오늘 교회도 제도와 문화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위험에 빠져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 안의 종교적 엘리트 의식과 차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회개합시다.
- 교회 밖의 죄인과 병든 영혼을 의사이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품읍시다.
- 허물이 있는 이웃을 먼저 끌어안는 은혜를 실천합시다.
- 교회의 문화와 제도를 절대시하지 않고,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내려놓읍시다.
- 예수님을 신랑으로 만나는 기쁨을 예배와 신앙생활의 중심에 두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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