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교회 (벧전 2:11~17)

2017.10.01이재훈베드로전서 2:11~17

온누리교회는 위대한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겸손과 낮아짐과 섬김으로 세상 속에서 선을 행하는 선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선은 육체의 정욕을 이기는 영혼의 자유와 세상 속의 선한 행실로 드러납니다.

위대한 교회가 아니라 선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Good to Great가 아니라 Great to good으로 이 책의 명칭을 적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목자가 아니라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고, 스스로를 높이신 적이 한순간도 없습니다. 높이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은 스스로를 낮추시고 겸손하셨고 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스스로를 높여 위대해지려 하지 말고 겸손과 낮아짐과 섬김을 통해 선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선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그 상태이고, 거룩은 그 선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선한 일을 위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기는 영혼의 자유로 세속주의를 넘어섭니다 (11절, 16절)

베드로전서 2장 11절은 영혼을 대적해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멀리하라고 권면합니다. 16절은 여러분은 자유인으로 살되 그 자유를 악행의 구실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악해서 우리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육체의 정욕에 우리가 무너지기 때문에 세상이 더 악해집니다. 깊은 바다의 물고기가 강한 수압을 견디듯, 우리 영혼에 강건함이 있다면 세상의 악한 압력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며, 멈추고 내려놓을 수 있는지가 자유를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진리를 알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분리주의를 넘어 선한 행실로 복음의 공적 진리를 드러냅니다 (12-15절)

베드로전서 2장 12절은 이방 사람 가운데 선한 행실을 나타내라고 하고, 15절은 선을 행해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함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지만, 선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자연과학으로 증명된 것만 공적 사실로 여기고, 윤리와 종교와 신앙은 사적 영역에 가두려는 사상이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사적 영역에 갇힌 진리가 아니라 모든 영역의 공적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변증이나 말만으로 증명되지 않고 선한 행실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가 세운 선한 행실의 역사가 한국 사회를 바꾸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변화될 때마다 교회가 선한 행실을 먼저 보였습니다. 1890년대부터 우상숭배와 미신을 철폐하는 일이 일어났고, 조혼과 남존여비 같은 구습도 교회 안에서 먼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1899년 대한 그리스도 회보에는 부모의 간섭 없이 서로 배우자를 택해 결혼한 일을 희한한 일이라고 실을 만큼 그 변화가 드물던 때였습니다. 1901년 장로교 교육위원회는 결혼, 지참금, 축첩제도 같은 악습을 교회가 먼저 금지하며 사회를 개혁했습니다. 독립운동의 주역들이 한국교회의 지도자였고, 6.25 전쟁 후에는 피난민과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한센병 치료, 결핵퇴치, 금주와 절제, 공창폐지, 농촌운동의 중심에도 교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속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모든 종족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세계 속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 존 웨슬리는 전 세계가 나의 교구라고 말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를 물었지만 사마리아인은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를 물었다고 해석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해야 합니다. 네팔 고래다라 마을을 재건하고 아프리카의 어린 생명을 살리는 일이 그런 실천입니다. 또 온누리는 모든 종족을 환영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주민과 탈북민을 환영하고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선한 행실입니다. 천국에서도 각 민족의 문화가 하나님을 높이는 수단이 되므로, 이들을 환영하는 것은 천국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국가관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애국심을 가지되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국가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진정한 애국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합당하도록 나라의 질서가 변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어려운 나라를 돕고, 이주민과 장애인을 품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대열에 성도가 있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3-14절의 왕과 총독에게 순복하라는 말씀은 국가를 우상화하라는 뜻이 아니라, 악을 징벌하고 선을 권장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를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담을 넘어 사회의 책임을 지고 하나님 나라의 선을 이 시대에 드러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육체의 정욕을 멀리하고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립시다.
  • 세상과 분리되는 거룩에 머물지 말고 선한 행실로 세상 속에 선한 영향력을 나타냅시다.
  • 이웃과 세계의 필요 앞에서 멈춰 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봅시다.
  • 이주민과 탈북민 등 모든 종족을 환영하는 공동체를 함께 이룹시다.
  •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합당하도록 국가를 사랑하며 사회의 선을 위해 나섭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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