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정의를 굽게 하지마라 (출 23:1~9)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과 은혜에서 흘러나온 공평함이며, 그 정의를 굽게 하는 거짓, 치우침, 미움과 무관심을 마음에서 내어 쫓아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정의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되며 사랑으로 실천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관념이나 상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그분의 성품에서 나옵니다. 미가서 6장 8절은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이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마음속 사랑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성경적으로 정의란 사랑에서 흘러나온 공평함입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파괴가 될 수 있으므로, 정의를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율법의 정의는 심판 이전에 은혜와 사랑을 베푸는 정의입니다
율법은 추수 때 이삭을 남겨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가져가게 하고, 3년마다 한 번씩 드리는 십일조를 구제에 쓰도록 하였습니다. 희년에는 빚이 탕감되고 토지가 원래 소유대로 돌아가, 실패한 사람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공평한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은혜를 많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덜 이기적이 되고 더 정의롭게 살아갑니다. 은혜가 정의를 만들어냅니다.
정의를 굽게 하는 첫째 요소는 거짓입니다 (1절, 7-8절)
헛소문을 퍼뜨리지 말고, 악인 편에 서서 악한 증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된 일에 휘말리거나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의인의 말을 왜곡합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며, 그가 통치할 수 있는 영역은 거짓의 영역뿐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의 말씀처럼 만물보다 심히 거짓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내 마음속의 거짓을 제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정의를 굽게 하는 둘째 요소는 치우침입니다 (2-3절, 6절)
군중을 따라 다수의 편에 서서 공의를 그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는 많은 사람이 지지했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수결은 진리가 아닙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편들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지만, 약자라도 거짓되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치우치지 않는 균형입니다.
정의를 굽게 하는 셋째 요소는 미움입니다 (4-5절)
원수의 나귀가 길을 잃었거나 짐에 눌려 주저앉아 있을 때 외면하지 말고 찾아 주고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원수의 짐을 덜어 주는 것이 사랑이며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며 인종차별 철폐를 외쳤고, 그 정의의 운동이 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미움에서 비롯된 정의는 진정한 정의가 될 수 없습니다.
무관심과 냉대도 이방인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9절)
이방 사람을 억압하지 말라는 말씀은 직접적인 가혹행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관심과 냉대에도 해당합니다. 이방인은 외국인 노동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도 포함합니다. 낮아질 대로 낮아질 때에야 외면했던 이들이 보이게 되므로, 우리가 더 낮은 곳으로 나아갈 때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마음속 거짓을 먼저 제거하고 헛소문과 뇌물에서 떠나 진실을 말합시다.
- 다수의 의견이나 편견에 휩쓸리지 않고 치우치지 않는 균형으로 판단합시다.
- 원수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의 짐까지도 외면하지 않고 도와 일으켜 줍시다.
-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방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냉대하지 않도록 돌아봅시다.
- 정의를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먼저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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