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라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이웃을 비판의 대상이 아닌 사랑과 섬김의 대상으로 보게 하며, 우리가 채무자로서 먼저 대접할 때 사랑과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입니다.
이웃은 비판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대상입니다 (12절)
마태복음 7장 12절은 율법과 선지자의 요점이 담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1절부터 6절에서 주신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의 연장선에서 읽어야 합니다. 형제를 비판하지 않는 데서 나아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이웃을 대접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웃은 남편과 아내, 가까운 사람과 원수, 나와 상관없는 사람까지 포함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주신 대상입니다. 우리는 계급이 아니라 사랑으로 만나기 위해 존재하며, 사람을 번호나 등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성경의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46절이 지적하듯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도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채권자가 아니라 채무자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23절 이하의 비유에서 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은 일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엄청난 빚을 하나님께 탕감받은 채무자이기에 겸손과 감사와 눈물이 있습니다. 채권자는 당당하고 교만하며 결코 겸손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잘못했더라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비하면 백 데나리온에 불과하므로, 화를 내고 야단칠 수 없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리입니다.
먼저 대접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로마서 12장 9절 이하와 베드로전서 4장 7절 이하는 사랑과 손 대접, 원망 없는 대접을 가르칩니다. 받는 입장은 순간 기쁠 뿐 궁극적으로 행복하지 않으며, 진정한 행복은 자기를 비우고 자기의 것을 나눌 때 옵니다. 화려한 대접보다 마음이 담긴 작은 정성이 중요하며, 사랑이 깃들지 않은 대접은 쇼에 불과합니다. 이 말씀의 특징은 남이 나를 대접하면 그때 나도 대접하라는 수동적 말이 아니라, 상대가 대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대접하라는 능동적 명령이라는 점입니다.
먼저 대접하기 시작할 때 정의와 평등이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사회가 외치는 정의와 평등의 문제는 서로가 먼저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데서 어긋납니다. 정의와 평등은 월급이나 지위를 똑같이 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먼저 대접하고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존경과 사랑을 먼저 보낸다면 노사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입니다. 문제의 뿌리는 자기 만족과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이며, 이 말씀에 가장 반대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이기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며 거듭남의 눈으로 봅니다
이 말씀을 실천하려면 마태복음 22장 34절 이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나는 경험이 있어야 남을 대접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또한 하나님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편에 세우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의 나쁜 점보다 회개의 눈물을 보시듯, 다른 사람을 궁휼과 거듭남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궁휼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이웃을 비판과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대상으로 봅시다.
-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을 조건 없이 사랑합시다.
- 내가 받은 탕감의 은혜를 기억하며 상대의 잘못 앞에서 겸손한 채무자의 자리에 서 봅시다.
- 남이 먼저 대접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원망 없이 마음을 다해 먼저 대접합시다.
- 다른 사람을 궁휼과 거듭남의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한 해를 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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