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복의 역설 (눅 6:20~26)
참된 진리는 세상의 논리로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그날을 소망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역설적인 복이 됩니다. 가난과 눈물, 미움까지도 제자에게는 복이 될 수 있습니다.
모순처럼 보이는 말씀이 역설로 바뀝니다
사람들이 참된 진리를 깨닫기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진리는 세상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모순처럼 보입니다. 둘째, 우리 자신이 모순된 존재입니다. 우리 안에는 믿음과 의심, 사랑과 미움이 함께 있고,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고백했듯이 선을 원하면서도 악을 행하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person의 어원인 페르소나가 가면을 뜻하듯이, 우리는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가면을 바꿔 쓰고 홀로 있을 때조차 가면을 벗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역설이란 모순처럼 보이는 두 명제가 하나 되어 진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전쟁은 평화다는 말은 모순이지만, 평화를 지키려면 싸워야 한다는 말은 역설입니다.
가난과 눈물도 제자에게는 복입니다 (20절)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라보며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으니 하나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풀 첫 열쇠는 대상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가난 그 자체가 복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제자들이 겪는 가난과 굶주림, 눈물과 미움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서 순종의 복으로 꼽히던 부유함과 배부름, 칭찬과 웃음이 여기서는 화가 된다고 하신 것도 그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자와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가 이 모순을 역설로 바꿉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가 먼저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결단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내가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 의식이 하나님의 다스림 밖에 있었음을 인정하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변명하고 책임을 전가했을 뿐 돌이켰다는 증거가 없고, 그래서 아담의 후손은 모두 하나님 나라 밖에서 태어난 존재입니다. 세리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한 뒤 잘못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가난해졌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서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 밖에서 아무리 부유하고 웃으며 살아도 그 인생에는 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을 살되 그날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21-25절)
본문에는 지금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지금 배고픈 사람은 복이 있고 지금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날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날이 보장된 사람은 가난과 굶주림, 울음과 미움 속에서도 하늘의 상이 크기에 낙심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날이 준비되지 않은 채 지금의 부유함과 배부름, 웃음과 칭찬에 갇힌 인생은 화가 있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배부름 자체를 정죄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듯이, 배부름의 노예가 되어 그날을 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지금과 그날의 긴장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칭찬보다 진리를 말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26절)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자가 화가 있다는 말씀은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이 거짓 예언자와 같을 경우라고 설명합니다. 구약의 거짓 예언자들은 전쟁에 나가는 왕에게 무조건 이긴다고 말하고, 잘못하는 왕에게도 옳다고 말하여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다 머리를 뜯기고 구덩이에 던져지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역할은 사회를 향해 옳은 말을 하다가 배척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첨과 거짓으로 얻는 칭찬은 복이 아니라 화가 됩니다. 칭찬이라고 다 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가 모순을 역설로 바꿉니다 (22절)
예수님은 인자 때문에 미움받고 배척받고 욕을 먹어도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자는 예수님이시고, 여기에 십자가를 더하면 이 말씀이 분명해집니다. 의로우신 분이 불의한 자들에 의해 죽임당하신 십자가는 세상의 모순이며, 헬라인에게는 스캔들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주여 나로 하여금 죽지 않도록 죽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피해야 할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고, 붙잡아야 할 죽음은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못 박히는 자아의 죽음입니다. 물고기 상징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십자가가 사형틀임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십자가는 무력해 보이지만 자기를 부인하는 자리가 가장 강한 능력의 자리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주님을 따르는 결단인 회개를 날마다 드립시다.
- 부유함과 배부름, 칭찬 속에서도 그날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난하게 지킵시다.
- 아첨과 거짓으로 얻는 칭찬을 구하지 않고 옳은 말을 하는 자리에 서기를 힘씁시다.
-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택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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