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열매 맺는 예배 (고전 14:13~25)
은사는 자랑하려고 받은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라고 받은 선물입니다. 영과 이성으로 함께 기도하고 절제하며 분별할 때 예배가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임재가 세상에 드러납니다.
문제는 은사가 아니라 은사를 쓰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예배는 실제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고린도 교회는 방언, 예언, 지식, 치유 같은 신령한 체험이 넘쳤고, 모일 때마다 은사를 보여주고 자랑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화려함 뒤에 빠진 것을 봅니다. 은사는 있는데 공동체는 세워지지 않았고, 기도는 뜨거운데 삶은 변화되지 않았으며, 예배는 열정적인데 불신자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은사 자체가 아니라 은사를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본문은 영과 이성이 어우러지는 예배, 성숙한 분별로 은사를 쓰는 삶, 하나님의 임재가 세상 앞에 드러나는 공동체라는 세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영으로도 이성으로도 기도합니다 (13-17절)
바울은 방언하는 사람이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내용이 전달되지 않으면 공동체에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14절의 '이성'은 헬라어 프레넨으로, 이성·지성·정신·이해·깨달음을 뜻합니다. 열매란 기도할 때 마음에 맺히는 회개와 감사, 고백, 깨달음, 확신, 결단입니다. 그런데 방언은 기도하는 자신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니 이런 열매를 맺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5절에서 영으로도 이성으로도 기도하고 찬미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영과 이성은 대립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적인 존재이자 지정의를 갖춘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영으로만 드린 기도에는 은사 받지 못한 사람이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고, 예배의 역동성도 사라집니다. 주일 예배의 대표 기도자가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1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다섯 마디입니다 (18-19절)
바울은 18절에서 여러분 모두보다 방언을 더 많이 한다고 감사합니다. 자랑이 아니라 역설입니다. 방언을 누구보다 풍성하게 받은 바울이 교회 안에서는 그것을 절제합니다. 교회에서는 방언으로 1만 마디 하는 것보다 깨달은 이성으로 다섯 마디 말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듣고 이해하는 말이 공동체에 깨달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1만 마디의 요란함보다 다듬어진 다섯 마디가 더 따뜻하고 명쾌합니다. 오늘 새벽 우리가 드리는 기도 한마디 한마디가 그 다섯 마디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기도는 습관처럼 흘러나간 말이었습니까, 마음에서 열매 맺은 기도였습니까? 영과 이성이 함께 하나님을 향해 있었는지 돌아봅시다.
성숙함은 더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더 절제하는 것입니다 (20-23절)
바울은 생각하는 데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어른이 되라고 권합니다. '생각'은 정신적·영적 활동의 자리로 여겨지던 횡경막에서 나온 말로, 판단하고 절제하며 분별하는 성숙한 지각을 뜻합니다. 성숙이란 더 많이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더 절제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은사를 과시하거나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언제 어디서나 쓰면 된다는 태도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21절에서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다른 방언으로 주신 심판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가 모두 방언하는 모습을 보면 미쳤다고 하며 회개하지 않고 교회에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어떤 문도 열지 못합니다. 은사는 나를 신령한 존재로 만들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공동체를 세우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사랑 없는 은사는 요란한 꽹과리일 뿐입니다.
말씀 앞에 드러난 사람이 엎드려 경배합니다 (24-25절)
본문의 핵심은 24-25절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 예언,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속에 숨은 것이 드러납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던 자신의 민낯입니다. 그러나 드러남은 수치와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며 참으로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계신다고 고백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것은 정죄가 아니라 예배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사람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임재의 증거가 사람을 무릎 꿇게 합니다. 제가 청년 때 이 교회 예배에 처음 참여해 찬양에 감동하고 마태복음 강의를 들으며 울었습니다. 어려운 말은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쉬운 말씀이 마음에 닿을 때 우리는 엎드립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영과 이성이 함께 하나님을 향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 내 기도에 회개와 감사, 결단의 열매가 맺히는지 날마다 돌아봅시다.
- 은사를 과시하지 말고 상황과 대상에 맞게 절제하며 사람을 세우는 데 사용합시다.
-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증언합시다.
- 1만 마디의 요란함보다 깨달은 다섯 마디로 기도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배 전체를 받아쓴 원문입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