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7가지 치명적인 죄(5) - 탐욕 (왕상 21:1~16)
탐욕은 돈과 소유에 대한 왜곡된 사랑으로, 필요 이상을 원하는 데서 시작해 우리의 목을 조여 삶을 파괴합니다. 탐욕을 이기는 길은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청지기로서 기쁘게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탐욕은 가시덤불처럼 우리의 목을 조입니다
탐욕은 돈과 소유에 대한 지나치고 왜곡된 사랑입니다. 영어 miser(구두쇠)와 miserable(비참한)이 연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구두쇠의 삶은 결국 비참한 삶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시덤불의 기운에 막힌 씨앗이 자라지 못하듯, 탐욕은 서서히 우리의 목을 졸라 삶을 파괴합니다. 렘브란트는 탐욕으로 마음이 어두워져 불행한 인생을 살았지만, 다시 예수님께 돌아와 신앙의 화가가 되었습니다.
탐욕은 다섯 단계로 자라 삶을 파괴합니다
탐욕은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합니다. 다음 단계는 소유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여 소유가 신분과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믿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소유한 것에 의해 오히려 자신이 소유당하고 비인격화됩니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필요한 이웃에게 무정하고 무관심해져 점점 고독해집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소유까지 빼앗는 악을 행하게 되며, 이런 탐욕의 구조가 사회를 지배하기도 합니다.
탐욕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악을 행하게 합니다
주전 856년 아합 왕 부부의 이야기가 이 다섯 단계를 잘 보여줍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왕이었고, 그의 아내 이세벨은 우상 숭배를 이스라엘에 퍼뜨린 여인이었습니다. 아합은 이웃 나봇의 포도원을 원했지만 나봇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을 팔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아합이 낙심하자, 이세벨은 거짓 증언으로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살인과 도적질을 행한 것입니다.
탐욕의 정체는 왜곡된 소유의식입니다 (16-21절)
누가복음 12장에서 한 사람이 유산 문제로 예수님께 중재를 청하자, 예수님은 그 마음에 탐욕이 있음을 보시고 모든 탐욕을 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부자는 곡식을 쌓을 창고를 더 크게 짓겠다며 '나'라는 말을 여섯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탐욕의 정체는 지나치게 왜곡된 자기 소유의식입니다. 하나님을 내가 조종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도 같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 나누며 사는 삶이 승리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말씀합니다. 돈 자체가 악이 아니라 돈을 사모하면 믿음에서 떠나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가난해도 부해도 탐욕의 위험은 같습니다. 잠언 11장 24-25절은 베푸는 사람이 더 많이 얻고 번영하게 된다고 약속합니다. 작년 두 권사님은 평생 모은 전 재산을 한동대학교에 기부하고, 18년간 선교사로 봉사하셨습니다. 소유가 우상이 되는 시대에 참된 청지기의 모습을 보여준 믿음의 승리자들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소유가 나의 정체성이 되지 않도록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맙시다.
- 이웃의 필요에 둔감해지지 않고 민감하게 살펴봅시다.
- 내 시간과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며 청지기로서 기쁘게 나눕시다.
- 돈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믿음의 자리에 머뭅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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