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가스펠 프로젝트 [7] 니고데모를 깨우치신 예수 (요 3:1~16)
하나님은 거듭난 사람인가로 우리를 구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장소보다 하나님의 통치이며, 성령으로 거듭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영생을 얻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으나 거듭나지 못한 니고데모 (1-2절)
하나님은 피부색, 성별, 빈부, 학식으로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거듭난 사람인지, 성령이 계신 사람인지로 구별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공부하고 모세오경을 암송하며 매주 금식한 경건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선생이었고, 사법과 입법 권한이 있던 72명의 공회 산헤드린의 일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할 때 값비싼 몰약을 가져온 것을 보면 부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랍비'라 부르며 공손히 대했고, 성전 소동과 표적들을 차분히 살핀 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나라를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칭찬에 답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충격요법 (3절)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칭찬에 대꾸하지 않으시고 곧장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너는 아직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니 불쾌할 수 있지만,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고 봅니다. 늘 존경받던 니고데모는 자기를 내려놓기 어려웠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은혜와 긍휼이 절실한 죄인으로 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 38년 된 병자, 세리처럼 자기가 망가졌음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더 쉽게 만났습니다. 성취한 사람에게는 그 성취가 장애물이 될 수 있고,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은 그의 자부심이 먼저 꺾여야 함을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장소로 생각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스스로 포로 상태라 여겼고, 제2의 모세인 메시아가 와서 제2의 출애굽을 이루리라는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이사야 35장을 바탕으로 한 복음성가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와,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지금이냐는 사도행전 1장 제자들의 질문에 이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니고데모도 정치적, 군사적 회복을 기대하며 밤에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씀하셨기에 핀트가 맞지 않았고, 니고데모는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가야 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죄의 종에서 풀려나는 성령의 거듭남 (5-8절)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36장 25-26절은 성령이 돌 같은 굳은 마음을 없애고 하나님을 감각하는 부드러운 새 마음을 주시리라 약속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라 착각하지만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어서, 원하지 않는 삶에 끌려다닙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대로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고 죽음이 두려워 평생 노예로 사는 사람들을 풀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죄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거듭남은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며, 바람이 보이지 않아도 실재하듯 성령도 지금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성령이 깨우쳐 주셔야 말씀을 깨닫습니다
한충희 목사님은 외교관 시절 작은 한인교회 수련회에서 눈물 콧물로 회개하며 식기세척기에서 씻겨 나온 접시처럼 다시 태어난 기쁨을 누렸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마음에 새겨져 인생이 달라졌고 결국 선교에 앞장서게 되었으니, 사람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령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니고데모를 책망하셨습니다. 저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람뿡의 시골 교회에서 요한복음을 가르칠 때, 초등학교도 못 나온 할아버지가 3시간을 걸어와 가장 일찍 앉아 얼굴이 빛나도록 말씀을 공부하시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말씀은 세상 지식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13-16절)
예수님은 민수기 21장 사건으로 설명하십니다. 불평하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백성이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면 나았듯, 인자도 들려야 하며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우리는 믿고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코로나 파티에 갔다가 "코로나19가 거짓말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죽은 청년처럼, 우리도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대적하고 무관심했던 세상을 독생자를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다고 전합니다. 이 사랑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사랑이 아니라, 영생이 걸려 있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사랑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성취와 신분을 내려놓고 은혜와 긍휼이 절실한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 내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돌아보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 마음을 구합시다.
- 성령께서 말씀을 깨우쳐 주시도록 겸손히 구하며 말씀 앞에 앉읍시다.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우리의 영적 현실을 바로 인식합시다.
-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 누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