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라_전체
예수를 믿는 것과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은 별개입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고 성령의 세례와 임재를 사모할 때 교회와 삶이 새로워집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은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도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고 썼으니,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도 이 질문을 한 것은 예수를 믿는 것과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이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답했고, 그들이 받은 것은 회개의 세례인 요한의 세례였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뒤에야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는 체험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길에서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음성을 들었고, 사흘 동안 시력을 잃고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눈을 떴을 때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여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예수님의 실체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이성과 의지로 믿고 영접하는 것과 예수님의 영이 내 몸을 통과하는 체험은 다릅니다. 이 체험이 있었기에 바울은 감옥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이 불은 고난과 세월이 깊어져도 꺼지지 않고 타올랐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교회를 세웁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하는 은사, 예언, 방언, 통역 등 성령의 은사들을 말했습니다. 이는 그가 직접 체험했기에 증언할 수 있었던 진리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성령의 열매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 인내와 자비, 양선과 충성, 온유와 절제를 말합니다. 교회 부흥의 비결은 프로그램이나 재정이 아니라 성령 세례와 말씀의 능력에 있습니다. 교회를 변화시키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참된 시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임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 또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을 박식하게 알던 아볼로도 더 깊은 진리를 배워야 했듯이, 겉으로 같아 보여도 생명이 있는지는 품어 보아야 압니다. 건물과 사람과 프로그램보다 먼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에게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성령 받지 못한 설교, 찬양, 기도는 그 의미를 잃습니다.
안일함을 버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 교회는 급성장 이후 위기를 느껴 교인들에게 40일 금식을 명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의 급성장이 자칫 급속한 쇠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공과 부흥에 만족하고 안일하게 머문다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의 말씀처럼 능력은 힘이나 능력이나 우리의 열정이 아니라 성령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살 길은 프로그램이나 돈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 성령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을 믿는 데 머물지 않고 성령의 능력을 구합시다.
- 말씀과 기도 가운데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합시다.
- 교회의 성장과 프로그램보다 성령의 임재를 먼저 구합시다.
-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우리 안에 나타나기를 기도합시다.
- 안일함을 버리고 금식하며 주님의 인도를 겸손히 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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