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가스펠 프로젝트[9]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리라 (요 4:3~14)
예수님은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을 먼저 찾아오셔서, 값을 다 치르고 얻으신 구원의 우물, 곧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선물로 주십니다.
대조되는 두 사람, 모두의 구원자 예수님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와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은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니고데모는 지위 높은 남성 지도자로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왔고, 여인은 버림받고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예수님이 먼저 우물가에서 기다리셨습니다. 니고데모는 그 뒤의 변화가 분명하지 않지만,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수가성에 들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증거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죄인이어서 예수님이 필요했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각 사람에게 맞게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사람을 기계적으로, 판에 박힌 말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는 하나님 나라와 거듭남을 말씀하시며 도전하고 책망하셨지만, 여인에게는 물을 주제로 선물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젊은 부자 관원에게는 모든 재산을 팔라 하셨고, 19장의 삭개오에게는 네 집에 머물겠다고 하셨습니다. 삭개오와 여인은 재물과 삶의 허무함 속에서 깊이 목말라 있었습니다. 세상의 큰 특권보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며, 특권은 때로 은혜를 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목마른 영혼을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가신 주님 (7-10절)
니고데모는 진리에, 여인은 관계에 목말랐습니다. 여인은 다섯 남편을 거치고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했어도 갈망이 풀리지 않아, 사람들의 눈총을 피해 정오에 홀로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여리고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지만, 예수님은 사회적 장벽과 편견을 넘어 사마리아를 지나가셨습니다. 물을 달라는 부탁에 여인이 냉소로 답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온유와 인내로 이끄셨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조소하는 것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니, 우리도 맞대응하기보다 예수님을 정확히 알리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값이 지불된 구원의 우물, 예수 그리스도 (11-14절)
여인은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우물만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영혼의 목마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12장 2-3절의 구원의 우물은 원문에 단수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야곱이 값을 주고 산 땅의 수가는 '지불되었다'는 뜻이어서, 값이 다 치러졌기에 생수를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과 잘 맞습니다. 예수님은 그 값을 치르시려고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읽고 쓰고 암송할 때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며, 저도 휴가 중 창세기를 필사하며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터진 웅덩이를 버리고 생수의 근원께로
예수님은 우리가 꺼내기 싫어하는 가장 불편한 단어, 여인에게는 '남편'으로 찾아오셔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삭개오가 이름이 불리자 무너졌듯, 나를 아신다는 사실이 사람을 변화시키며, 예수님께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을 두 가지 악이라 합니다. 체스터턴의 말처럼 하나님을 버리면 다른 무언가를 경배하게 됩니다. 인간은 물질로 채울 수 없는 의미와 영광, 영혼의 갈망을 지녔고, C.S. 루이스의 말대로 이는 우리가 다른 세상을 위해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날마다 구원의 우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생수를 길어 마십시다.
- 내가 어떤 갈망을 가졌고 어떤 터진 웅덩이를 파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내가 꺼내고 싶지 않은 아픔까지 예수님 앞에 숨김없이 드러내고 돌이킵시다.
-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의 냉대에 맞대응하기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리는 일에 집중합시다.
- 다 이해되지 않아도 말씀을 읽고 쓰고 암송하며 내 안의 변화를 소중히 여깁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