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예정 신앙 (롬 9:1~18)
예정 신앙은 내 선택 이전에 하나님이 나를 택하고 부르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구원의 확신을 주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뜨거운 선교로 이어집니다.
동족의 불신앙 앞에 선 바울의 고민 (1-5절)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지만, 동족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데다 바울 시대에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큰 근심과 고통을 안고 있었습니다. 율법과 약속, 예배하는 백성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리스도께서 유대 민족을 통해 오셨는데도 그들은 메시아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기고, 이 문제가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 이어집니다. 로마서 8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안전함을 확신시키신 뒤에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그 확신을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참 이스라엘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6-9절)
첫 번째 질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파괴되었는가 하는 것이며, 대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6절에서 앞의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이고 뒤의 이스라엘은 십자가로 구원받은 모든 백성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6장의 '하나님의 이스라엘'도 믿는 유대인과 십자가로 구원받은 이방인을 함께 가리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모두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녀였지만 약속을 따라 태어난 이삭만 인정받았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자손으로 여김을 받으며, 약속이 먼저 있었기에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선택으로 (10-13절)
어머니가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반문에 대비해, 같은 어머니 리브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예를 듭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고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당시 문화적 관습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인간적으로 더 나아서가 아니라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는데도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택하신 것입니다. 말라기를 인용한 '미워하였다'는 고대 근동에서 감정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부모와 목숨까지 미워하라 하신 것도 같은 뜻이며, 에서를 지옥에 버리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정 신앙은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예정 신앙은 나의 구원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 미리 정하심과 부르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가 똑똑해서 여러 종교 중에 기독교를 골랐다는 신앙은 흔들리고, 하나님이 나를 택하고 부르셨다는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정이 인간의 선택과 판단을 빼앗는다고 여겨 거부하지만, 모든 것이 내 하기에 달렸다는 인본주의는 세상을 혼자 이겨야 하는 두려움을 낳습니다. 예정 신앙은 인간의 선택을 마비시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내리는 모든 결정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게 하며, 인생이 극적으로 변화됩니다.
모두 지옥에 마땅한데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14-18절)
두 번째 질문은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 아니냐는 것이며, 대답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착각입니다. 인간은 배신의 DNA를 지닌 완악한 존재라 모두 지옥에 가야 마땅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해도 누구도 하나님의 공의에 불평할 수 없습니다. 지옥은 떨어져도 끝내 회개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는 곳이며, 죄에 진노하시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바로에게 하신 말씀에서 완악하게 하신다는 것은 악을 넣으심이 아니라 인간 안의 완악함을 제어하시는 은혜를 거두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있어서 세상이 지옥이 되지 않고, 하나님은 완악한 자를 통해서도 능력과 이름을 나타내십니다.
예정은 운명론이 아니라 선교의 열정입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끝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믿지 않도록 결정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의 역사는 계속되어 십자가로 구원받는 이스라엘을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예정은 운명론이나 체념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뜨거운 열정입니다. 동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끊어져도 좋다는 바울의 열망이 바로 예정 신앙에서 나왔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잘나서 믿었다고 하지 않았고, 먼저 자신을 택하신 하나님이 아직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구원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신앙은 예정 신앙이어야 하며 뜨거운 선교적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믿음이 내 선택에서 시작되지 않고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서 시작되었음을 고백합시다
-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에 구원의 확신을 둡시다
-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과 함께 내리는 결정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갑시다
- 예정을 운명론으로 오해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 바울처럼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품고 선교적 신앙으로 나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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