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다시 선택하시는 하나님 (슥1:7-17)
하나님은 중단된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시며,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십니다.
성전 재건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복의 중심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와 성전을 잃고 포로로 끌려갔으며, 70년 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첫 사명은 학교나 공장보다 먼저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는 일이다’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땅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헌신과 온전한 순종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형편은 어렵고 하나님이 섭섭해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12절)
성전 재건이 중단되어 16년이 지나고 다시 시작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사람들 마음에는 낙심과 섭섭함이 자랐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천사가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서는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렵니까’라고 묻습니다. 헌신하고 순종해도 일이 풀리지 않고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평안해 보이니, 우리도 같은 섭섭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사정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질문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올려드리는 것이 믿음의 자리입니다.
온 땅이 조용하다는 보고 속에서도 하나님은 살피고 계십니다 (10-11절)
10절에서 말들은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상황을 살핀 뒤 보고합니다. 하나님이 상황을 몰라서 말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땅을 살피시고 감찰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시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잠잘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11절의 보고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평안해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평안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평안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십니다 (13-15절)
13절에서 하나님은 천사에게 은혜로운 위로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약한 백성을 괴롭히고 착취한 자들이 편안히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15절에서 하나님은 안일을 즐기는 나라들로 인해 몹시 화가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징계하셨어도 회개하고 돌아온 백성을 너무너무 사랑하십니다. 원문에는 ‘크게 질투한다’로 되어 있으며, 그 사랑을 공개적으로 고백하셨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채우시고 다시 선택하십니다 (16-17절)
성전 건축은 우리 실력이나 예산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줄을 치시고 이루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머니 사정을 보고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순종하면 채우시는 분입니다. 사렙다 과부가 흉년에 먼저 내놓았을 때 먹을 것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어려운 형편에서 순종할 때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형편이 좋아지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지금 순종하는 자리에 우리가 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를 천번이고 만번이고 다시 선택하시는 분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형편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결단합시다.
-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미루지 말고, 감동이 있을 때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금 순종합시다.
- 언제까지 하시냐는 섭섭함을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아뢰되, 하나님이 우리 사정을 아심을 믿고 나아갑시다.
- 죄책감에 눌리지 말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그대로 받아들입시다.
-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심을 담대히 고백하며 그 사랑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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