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축복(2)

2010.09.17하용조마태복음 18:18-35

용서는 사람의 힘이나 도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은혜를 받은 자가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용서의 값은 1만 달란트에 해당하므로,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마음이며 미움은 사탄의 성품입니다 (14-15절)

용서는 인간 속에서 찾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본질에 해당하는 성품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거듭난 사람이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그 안에 임재했음을 뜻합니다. 반대로 미움은 죄로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며 사탄의 본질에 해당하는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 아버지도 우리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인 참된 용서를 소유해야 합니다.

용서는 내 힘이 아니라 주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2, 골로새서 3:13)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내 힘으로 용서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우리는 내 힘으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용서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도덕이나 고도로 훈련된 의지로 하는 용서는 절망으로 끝나며, 주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고 그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교회에게 주어진 땅에서 매고 푸는 권세를 사용합시다 (17-19절)

교회가 죄 문제에서 내리는 도덕적, 영적 결정은 하늘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권세입니다. 죄를 범한 형제가 회개하지 않을 때 직접 만나고, 두세 증인과 함께 가며, 교회에 말하라는 순서가 주어졌습니다. 교회가 이 특권을 사용하지 못하고 세상의 한 조직처럼 존재하는 것은 큰 무능력입니다. 두세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을 우리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용서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 (21-22절)

베드로는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고 물으며 일곱 번을 제안했습니다. 당시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쳤으니 일곱 번은 인간적 도덕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답하셨는데, 이는 490번을 세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율법과 양심을 초월한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이 말하듯 하나님의 용서에는 조건도 제한도 없으십니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3-35절)

왕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진 종이 탕감을 받았지만,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감옥에 넣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는 액수이고, 백 데나리온은 석 달 정도 노동하면 갚을 수 있는 액수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상처와 미움은 백 데나리온에 해당하지만, 사람은 자기 상처는 크게 여기고 자기가 준 상처에는 둔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존재이니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께 받은 용서의 값을 기억하며 형제를 용서합시다.
  • 내 힘과 도덕으로 용서하려 하지 말고 주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합시다.
  • 미움과 분노를 내려놓고 용서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며 교회가 맡은 권세를 사용합시다.
  •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축복과 격려의 말을 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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