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주일에서 일상까지 (롬 12:1~2)
주일 예배의 감격은 월요일과 화요일의 삶 한복판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붙들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며, 마음을 새롭게 해 분별하는 삶이 일상의 예배입니다.
도망칠 날과 버텨야 할 날로 나눈 일주일
갤럽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금요일이 34%였고,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친 응답이 33%였습니다. 토요일을 떼면 일요일은 11%로 떨어지는데, 다음 날이 월요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싫어하는 요일은 월요일 4%보다 화요일 3%가 앞섰고, 이유는 일의 한복판에 있는 현실을 자각하며 현타가 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일주일을 도망칠 수 있는 날과 버텨야 하는 날로 나누고, 진짜 인생은 주말에 있다고 은연중에 믿습니다. 그러나 복음 앞에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기다려질 날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낼 월요일입니다.
교회는 미사일 발사대, 주일과 주중의 균형
교회는 미사일 발사대와 같습니다. 예배 가운데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해 세상으로 발사되어야 하고, 교회 안에서 터지면 자폭입니다. 신앙에는 모여 예배하는 주일 신앙과, 흩어져 가정과 직장과 학업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사는 주중 신앙이 있으며,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다윗』에서 다윗의 인간적인 삶이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같은 뿌리에서 흘러갔다고 말합니다. 하 목사님의 아드님도 아버지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동일하게 헌신하며 사셨다고 기억했습니다. 로마서 12장은 예배당의 예배가 화요일 아침에도 예배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십자가 사랑을 붙들라 (1절)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면합니다. 자비하심은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이며, 신앙의 시작과 끝이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교회에서나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명분적·심미적 그리스도인이 생깁니다. 십자가 사랑을 깊이 고민하거나 죽어본 경험 없이도 집사, 장로, 권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나 교회 집사야, 그런데 교회 안 다녀” 하며 맥주를 마시던 분처럼, 집사라는 이름은 남았어도 그 이름을 준 십자가는 삶에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인이 아니라 증인과 제자를 만들려고 죽으셨으니, 직분이나 성경 지식이 아니라 자비하심 위에 세워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세상의 틀에 찍히지 말고 거절하라 (2절)
로마서 1~11장이 복음의 교리라면 12장부터는 실천편인데, 바울이 가장 먼저 한 말은 “하지 말라”였습니다. 일상의 예배는 세상의 요청을 거절하는 용기에서 시작합니다. J. B. 필립스는 이 구절을 세상이 자기 틀 속으로 여러분을 짜 넣지 못하게 하라고 번역했고, 붕어빵 틀처럼 찍혀 나오는 인생을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더 많이 쌓고 한 방에 1억을 노리라 하지만, 광야의 만나는 하루치만 주어졌고 이틀치를 쟁이면 썩었습니다. 2017년 미국의 필그림 선교회는 교단이 동성 목회자를 허용하자 3천만 불 넘는 부동산을 두고 무일푼으로 나가며 이는 희생이 아니라 특권이라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세상과 불화하는 것은 영적인 바이탈 사인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끝을 보며 분별하라
“변화를 받다”는 헬라어 메타모르포로,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원래 형체가 부서져 전혀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이 폭격으로 무너진 독일 오페라하우스를 애도한 곡이듯, 세상 가치로 지은 집이 무너져야 하고 그 폐허 위에 복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세워야 합니다. 분별은 처세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영적 실체가 보이는 것이며, 고린도전서 12장 10절은 분별의 은사를 말합니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를 결과를 알고 하이라이트로 보면 긴장 없이 기대하며 볼 수 있듯, 분별은 복음 안에서 이미 정해진 끝을 알고 걷는 것입니다.
크리소스톰처럼 이미 끝을 본 인생
초대교회 교부 크리소스톰은 설교가 탁월해 황금의 입이라 불렸습니다. 황제가 추방하겠다 하자 온 세상이 아버지의 집이라 어디든 제 집이라고 답했습니다. 재산을 몰수하겠다 하자 이미 하늘에 쌓아 두었다고 했고, 옥에 가두어 고독하게 하겠다 하자 그리스도께서 늘 함께하시니 외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하나님 나라를 보며 그 끝을 오늘의 삶으로 가져와 누렸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분별하는 인생은 주일 예배당의 감격을 넘어 월요일의 한복판에서도 승리하며 영적 예배의 제단을 쌓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한 사람의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주일 예배의 감격이 월요일과 화요일의 삶 한복판까지 흘러가는 예배자로 살아갑시다.
- 직분과 성경 지식과 예배 횟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 위에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뜨겁게 끌어안고 사는지 돌아봅시다.
- 돈과 성공을 앞세우는 세상의 틀 앞에서 거절하고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의 결단을 합시다.
-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복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합시다.
- 복음 안에서 이미 정해진 끝을 오늘의 삶으로 가져와 누리며 삶의 예배의 제단을 쌓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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