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그 손으로요? (삿 3:12~17, 27~30)
하나님은 우리가 바친 동전의 값에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자기 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입니다. 그러니 대가를 구하지 말고 그분의 얼굴을 구하며 기뻐합시다.
막걸리와 땅콩, 도 투 데스의 마음
IT 업계에서는 새 서버를 여는 날 막걸리를 올리고, 미국 나사 연구소 관제실에서는 1964년 달 탐사선이 여섯 번 실패한 뒤 일곱 번째에 땅콩을 돌렸더니 성공했다 하여 땅콩을 돌려 먹습니다. 준비는 다 끝났는데 결과가 아직 손에 없을 때, 사람은 무언가를 내놓아 불안을 달랩니다. 고대 로마의 '도 투 데스', 곧 '당신이 주도록 내가 드린다'는 말이 그 마음입니다. 제사는 자판기이고 재물은 동전인 셈이며, 꼬리가 개를 흔드는 '웩 더 독'과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막걸리가 작정 새벽기도로, 땅콩이 헌금으로 이름만 바뀝니다. 하나님은 내가 드린 만큼 움직이시는 분이신지 묻는 것이 오늘 사사기 본문의 질문입니다.
구원은 바친 것이 아니라 부르짖음에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악을 행하자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하여 징계하셨고, 에글론은 믿음의 첫 기념비인 종려나무 성읍 여리고를 차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8년 동안 해마다 제일 좋은 것을 조공으로 보냈습니다. 조공으로 옮긴 '민하'는 레위기 2장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에 쓰인 단어와 같습니다. 그러나 18년 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하나님이 구원자를 세우신 것은 그들이 '자아크', 곧 비명 같은 부르짖음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서도 바칠 것이 없던 노예들의 울부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사사기 10장에서는 같은 부르짖음에도 하나님이 듣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큰 소리가 동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놓을 동전이 없음을 인정하는 소리와 그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만나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묶인 왼손을 그대로 쓰신 하나님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는 베냐민 지파의 왼손잡이 에훗이었습니다. 베냐민은 라헬이 죽으며 '슬픔의 아들'이라 지은 베노니를 야곱이 '오른손의 아들'로 바꾼 이름인데, 그 가문에 왼손잡이가 난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라는 뜻이며, 실제 장애인지 훈련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당시 사람들은 이를 정상으로 보지 않았고, 이름부터 삶까지 묶여 있던 그가 묶인 삶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는 칼을 오른쪽 허벅지에 찼고, 조공을 바치러 온 사람이라 경비병의 검문을 통과했습니다. 하나님은 손을 먼저 고치지 않으시고 묶인 그대로 통로로 쓰셨으니, 약한 가운데 온전해지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것입니다.
에글론은 신이 아니라 제물입니다
에글론은 조공을 독식하며 18년을 앉아 있었으니 이스라엘에게는 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름 '에글론'은 송아지라는 뜻이고, '매우 뚱뚱하다'는 말은 창세기 41장 바로의 꿈에 나온 살진 암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경은 그를 제물을 받는 쪽이 아니라 제단에 드려질 쪽이라고 비웃습니다. 에훗은 우상을 만드는 곳, 곧 길갈 근처 '프실림'에서 몸을 돌려 왕에게 돌아갔는데, 길갈은 열두 돌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던 곳입니다. 거기에 모압의 신 그모스가 서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3장에서 모압 왕 메사는 포위되자 아들을 성벽 위에 번제로 바쳤고 연합군이 물러갔으며, 메사 비석도 그모스의 노여움과 돌이킴을 말합니다. 그모스와 백성을 묶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습니다.
아들을 받는 신과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그모스는 성벽 위에서 아들을 받아갔지만, 하나님은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치려던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시고 덤불에 걸린 숫양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는 그곳을 '여호와 이레'라 불렀습니다. 그 하나님은 갈보리 언덕에서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은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받아내는 신 앞에서 아들을 주시는 하나님과 벌이는 싸움이 에훗의 이야기이며, 이 차이가 곧 복음입니다. 거래 위가 아니라 은혜 위에 선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동전이 아니라 얼굴을 구하십시오
에훗은 '내가 넘겼다'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희 원수를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고 외쳤으니, 구원은 바쳐서 산 것이 아니라 거저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헌금과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고, 문제는 무엇을 바라고 내느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이라 답하며, '기뻐하는 것'은 영어로 enjoy입니다. 엄마가 들어올 때 얼굴이 환해지는 집은 엄마를 기뻐하는 집이고, 나가야 환해지는 집은 기쁘시게 하는 척하는 집입니다. 겉모습이 같은 새벽기도도 한쪽은 동전이고 한쪽은 얼굴입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인의 자기 부인은 좋은 결과가 오지 않을 미래까지 부인하는 이중 부정이며,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섬기지 않겠다고 고백했습니다. 80년 평화가 없었을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느냐가 본문의 물음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가 드린 것의 값을 구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있는지 날마다 돌아봅시다.
- 새벽기도와 헌금이 거래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드립시다.
- 내놓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동전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해 부르짖읍시다.
- 부끄럽고 묶여 있는 나의 모습도 하나님이 구원의 통로로 쓰실 것을 믿고 맡깁시다.
- 좋은 결과가 없어도 하나님이 나의 기쁨이심을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배 전체를 받아쓴 원문입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