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생명 존중의 축복 (왕상 17:7~16)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르밧 과부의 절망 속으로 엘리야를 보내신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시며, 죽음 대신 하나님을 붙들 때 소망의 빛을 주십니다.
절망을 이기는 소망은 생명의 주인께로부터
극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죽음밖에 길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소망의 빛은 있습니다. 그 빛은 우리 생명을 창조하시고 존중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자기 자신이기를 원하지 않는 연약함의 절망과,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반항의 절망입니다. 그 이면에는 생명을 인간의 자유의지 영역으로 보는 인본주의와 유물론의 생각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의 속임수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자살은 살인이며 십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죽을 결심이 아니라 죽을 각오로 하나님을 붙들 때 구원의 빛이 임합니다.
자연은 자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7-9절)
열왕기상 17장은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수년 동안 비가 없으리라는 경고를 전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비와 햇빛을 자연, 곧 자동으로 여기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생명을 돌보시려고 내려 주시고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악인에게도 햇빛과 비를 주시며 모든 생명을 존중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연한 것을 멈추심으로 악을 징계하실 때, 무명의 시골 사람 엘리야가 최고 권력자 앞에 선 것은 죽음을 무릅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로 엘리야를 먹이셨고, 시내가 마르자 기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시돈 근처의 이방 마을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은 바알 숭배의 원조인 이세벨의 고향 지방으로, 그릿 시냇가에서 16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가정에 엘리야를 보내신 까닭 (10-12절)
하나님은 사르밧의 과부를 통해 엘리야가 돌봄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뭇가지를 줍던 그 여인은 12절에서 밀가루 한 줌과 기름 조금뿐이라며, 아들과 마지막 음식을 먹고 죽을 생각이었다고 답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이 맞지 않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엘리야를 훈련하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관점으로만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생명 한 생명을 얼마나 존중하시는지 보이시려고 엘리야를 이 가정에 보내셨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기다려 주고 말에 귀 기울여 주는 한 사람이 있으면 생명을 이어 갑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 모자의 생명을 지켜 주는 그 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믿음과 오병이어 같은 기적 (13-16절)
엘리야는 마지막 식사를 먼저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기적이고 잔인한 말처럼 들리지만, 14절에서 그는 여호와께서 비를 내리시는 날까지 통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으리라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달라고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인이 그 말씀대로 순종하자 그 집의 음식이 끊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아이의 도시락 오병이어로 수천 명을 먹이신 기적과 같습니다. 이 일은 엘리야를 공급하신 사건이면서, 더 중요하게는 죽음의 위기에 처한 가정을 살리신 사건입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첫째 적용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음식을 엘리야에게 주면 여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때는 많이 가졌을 때나 조금 가졌을 때가 아니라,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을 때입니다. 절망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찾아옵니다. 사도 바울도 아시아에서 살 소망까지 끊어져 마음의 사형선고를 받은 듯했는데, 고린도후서 1장 8-9절대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죽고 싶은 절망은 아직 밑바닥이 아닙니다. 자존심까지 다 내려놓고 내려가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없음을 깨닫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공급하십니다.
작은 것으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인생
둘째 적용은, 누군가를 도움으로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풍족한 빵을 먼저 주지 않으시고, 남은 한 끼를 나누는 섬김의 인생으로 여인을 세우셨습니다. 가진 것이 거의 없어도 아주 작은 것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깨달음이 인간의 고귀함이요 삶의 목적입니다. 산마루교회 이지현 목사님은 노숙인 목욕·빨래 시설을 지으면서 외부 후원을 마다하고, 노숙인들이 100원, 200원씩 직접 헌금하게 했습니다. 포항·경주·영천의 중고등학생 642명을 조사한 논문에서도 자원봉사와 삶의 만족도, 행복이 의미 있게 연결되었습니다. 죽음을 붙잡지 말고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은 죽음을 생각하는 영혼도 붙잡고 계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생명을 귀하게 여깁시다.
-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고, 남은 자존심까지 하나님께 내려놓읍시다.
- 비와 햇빛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생명을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 가진 것이 적어도 작은 것으로 누군가를 돕고 섬기는 삶을 삽시다.
- 죽음을 생각하는 이웃이 있다면 곁에서 그를 기다려 주고 귀 기울여 주는 한 사람이 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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