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하나님의 소망 (롬 15:8~21)
세상은 종말을 향해 절망으로 치닫지만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구원의 소망을 품고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이 흘러가는 통로로 쓰임받아야 합니다.
절망의 세상, 소망을 품으신 하나님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올해 2월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전쟁, 기근, 지진, 거짓 선지자, 식어지는 사랑이 지금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총기 난사와 마약으로 무너지고, 우리나라도 마약 소비국으로 바뀌며 저출산 위기를 맞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절망에 분노도 수치심도 없이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소망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3절의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을 두는 분이면서, 멸망할 세상에 여전히 소망을 품고 일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확실한 믿음의 미래
15장 4절은 성경이 인내와 위로로 우리에게 소망을 품게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소망은 안 될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낙관이지만, 성경의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소망은 믿음의 미래 시제입니다. 로마서 8장 23-25절처럼 몸의 구속과 부활, 새 하늘과 새 땅은 아직 보이지 않아도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기에 우리는 소망 가운데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천국의 소망이 현실을 외면하게 한다고 비판하지만,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일수록 세상에 깊이 참여하고 헌신합니다.
환란 속에서 더 빛나는 구원의 소망
로마서 5장 2-5절은 환란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소망은 모든 일이 잘될 때가 아니라 환란과 절망을 만날 때 열매 맺고, 어두운 밤하늘의 빛처럼 절망 속에서 더 빛납니다.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이 나라에서 누가 소망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복음의 빛이 소망을 주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환란이 소망을 만들어내는 역사를 체험했고, 그들의 기도가 이 민족이 다시 일어서는 데 쓰임받았습니다.
열방을 향한 소망이 분열을 이긴다
바울은 9-12절에서 시편 18편, 신명기 32장, 시편 117편, 이사야 11장 등 구약 네 구절을 잇따라 인용합니다. 핵심은 '이방 사람들'로 번역된 '에스네'가 모든 민족, 곧 열방이라는 뜻이며,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로마교회의 음식과 절기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에피소드일 뿐이고, 분열의 진짜 진원지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소망으로 하나 되면 싸울 시간도 에너지도 없어집니다. 온누리교회가 37년간 하나 됨을 유지한 것도 선교사 파송과 후원에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는 은혜
13절은 소망이 성령의 능력으로 흘러넘치기를 비는 바울의 기도입니다. 바울이 선교에 헌신한 것도 소망이 자신에게 흘러넘쳤기 때문입니다. 미국 켄터키 윌모어 애즈베리 신학교에서 몇 주째 예배가 이어지고 수만 명이 모여 기도하는 부흥은 하나님이 미국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은혜에는 내가 받는 은혜와 소망의 통로로 쓰임받는 은혜, 두 차원이 있고, 바울은 후자를 감사했습니다. 20절의 '열망'은 하나님의 소망이 흘러넘친 모습이며, 먼저 자신을 통로로 내어드릴 때 표적과 기사가 따릅니다. 세네갈 본나바 마을에서는 추장의 동생이 선교사가 오기 일주일 전 그 선교사를 꿈에서 보고 주민에게 따르라고 지시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소망을 품읍시다.
-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이루어질 구원의 소망을 확실히 붙듭시다.
-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으로 하나 되어 다툼을 내려놓읍시다.
- 나의 표정과 말과 선택이 소망의 이유를 묻게 하는 삶인지 돌아봅시다.
- 받은 은혜에 머물지 말고 소망이 흘러가는 통로로 나를 내어드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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