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왜 이러세요? (롬9:14-24)

2012.01.29조정민로마서 9:14-24

하나님은 악을 만드신 분이 아니며,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우리가 따지기보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는 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의 능력과 이름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악은 하나님을 떠난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악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악은 선이 없는 상태이고,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묵상하지 않는 삶은 결국 악을 묵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지 않으며, 창세기에서 가인은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면 못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을 이 첫 살인 사건이 보여 줍니다.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14-16절)

하나님이 불의하십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긍휼은 원하는 사람이나 달려가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배역이 무대감독의 권한에 달린 것처럼 우리 인생도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따질 수 있는 일과 따질 수 없는 일을 구분해야 하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태양을 두고 토론하듯 따질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책임지시는 분이시고, 우리에게 죽음을 허락하심은 인간을 책임지시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17-18절)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신 이유는 그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그분의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와 파리의 재앙이 이어져도 바로는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않았고,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 앞에서야 풀어 주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잔학성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행하시는 능력과 이름을 전하는 것이며,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회복시키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질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토기장이를 아는 믿음입니다 (20-21절)

욥은 끝까지 믿음이 좋았지만 마지막에 하나님께 대들었고, 하나님은 38장에서 61개의 질문으로 답하셨습니다. 땅의 기초와 바닷물과 죽음의 문을 아느냐는 물음 앞에서 욥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람이 무엇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말대답을 하느냐며 토기장이의 비유로 답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빚을 권리가 있듯이, 신앙은 하나님이 토기장이이시고 우리는 진흙임을 아는 것입니다.

쓰임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22-24절)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에도 오래 참으시며, 영광의 그릇에게는 그분의 영광이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가운데서도 우리를 부르셨고, 창세 전부터 택정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를 일방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막 쓸 그릇으로 빚으시든 귀하게 쓸 그릇으로 빚으시든 갈등하지 말고, 하나님이 지으신 용도에 따라 사는 것이 본분이고 행복이며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분을 만나는 삶이 이 땅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럽다는 사실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인정합시다.
  • 하나님을 묵상하며 악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이신 하나님 안에 머뭅시다.
  • 하나님께 따지기보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 인생을 맡깁시다.
  •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슴에 담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읍시다.
  •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이 드러나도록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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