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를 따르라 (3) 사슴이 알려준 제자도의 비밀 (시 42:1~11)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객관적 사실과 제자의 삶을 잇는 다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사슴처럼 주님을 갈망하고 자신에게 말하며 찬양으로 나아갈 때, 그 갈망이 따르는 발걸음이 됩니다.
사실과 체험을 잇는 다리는 갈망입니다
지난 두 주간 로마서 6장과 요한복음 15장을 통해 제자도의 근거를 살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했으므로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며, 참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서 그분이 일하시는 통로가 됩니다. 시편 42편은 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체험 사이의 다리가 갈망이라고 알려 줍니다. 발걸음보다 마음의 갈망이 먼저입니다. 지식만으로도, 의지적 노력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고, 지식과 실천을 잇는 것이 정서이며 그것이 갈망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Religious Affections』에서 참된 신앙에는 이 정서가 반드시 있다고 가르쳤고, 시편 42편을 자주 인용하며 감정을 분별하는 12가지 원칙을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낙타가 아니라 사슴입니다 (1-2절)
시편 기자는 목말라 헐떡이는 사슴에 자신의 영혼을 견줍니다. 사슴을 움직이는 것은 의무감이나 명령이 아니라 물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낙타는 몸에 물을 저장해 오래 견디지만 사슴은 수시로 물을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낙타가 아니라 사슴으로 지으셨으니, 물을 한꺼번에 담아 두고 예배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몸의 병이듯, 주님을 갈망하는 증상은 영혼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구원에 대한 고민과 말씀에 대한 의심도 갈망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갈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향한 갈망이며, 이 갈망이 깨어나는 자리에서 따르는 발걸음이 시작됩니다.
갈망은 세 겹의 광야에서 깊어집니다 (3-6절)
시편 기자는 편안한 곳이 아니라 세 겹의 광야에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회적 광야입니다. 사람들이 밤낮으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했는데, 이는 제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모욕입니다. 반대로 "당신을 보니 예수님을 믿고 싶어집니다"라는 말은 최고의 칭찬입니다. 둘째는 물리적 광야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행렬을 이끌던 지도자였지만 이스라엘 북쪽 헤르몬산과 미살산 근처에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압살롬의 반역 때 다윗과 함께 피신한 상황으로 추정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있어야 할 곳과 맡은 역할을 떠나 있었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5절과 11절에 반복되는 풀 죽고 불안한 내적 광야입니다.
영적 침체는 깊이 누린 이의 갈망입니다 (5절)
영적 침체는 영적 매너리즘과 다릅니다. 매너리즘은 몸은 예배에 나오지만 마음과 감정이 식어 갈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침체는 전에 누리던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끊어져 깊은 갈망이 일어나는 상태이며,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사람만 겪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이를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불렀고, 17세기 십자가의 성 요한이 이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평소 배불리 먹던 사람이 며칠 굶을 때 굶주림이 가장 크듯, 영적 충만을 경험한 사람이 영적 배고픔도 깊이 느낍니다. 깊은 침체와 낙심은 그가 더 깊은 임재를 경험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영혼에게 말하고 믿음을 선포하십시오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목사였던 마틴 로이드존스는 『영적 침체』에서 침체의 원인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주도적으로 말하지 않고, 자신이 우리에게 말하도록 수동적으로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 안에는 새 자아와 옛 자아의 갈등이 있어, 로마서 7장의 바울처럼 옛사람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우리가 듣는 자기 말의 대부분은 비교, 낙심, 포기, 두려움의 말이며,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 그런 존재가 됩니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어찌하여 불안하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자신에게 명령합니다. 말하는 주체는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난 새 자아입니다. 죄에 대해 죽은 자요 하나님께 산 자요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선포하며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갈망은 찬양과 주님의 길로 이어집니다
갈망의 절정은 "내가 오히려 그분을 찬양하리라"는 찬양의 자리입니다. 갈망이 자신에게 말하고 명령하고 찬양에 이를 때, 그 갈망은 주님을 따르는 발걸음으로 바뀝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기도를 마치고 십자가로 나아가실 때 제자들과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주님이 이 시편으로 기도하시며 광야와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 자기 영혼에게 믿음을 설교하셨다고 해설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조롱 앞에서도 주님은 아버지께 대한 갈망으로 "아버지여 주의 손에 의탁합니다"라 하시며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라고 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이 체험으로 초청하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낙타처럼 가끔 물을 채우는 신앙이 아니라 사슴처럼 날마다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살아갑시다.
-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보다 하나님 그분 자신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 침체와 낙심이 올 때 옛 자아의 말에 끌려가지 말고, 내 영혼에게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말하며 그리스도 안의 정체성을 선포합시다.
- 갈망을 찬양의 자리로 가져가, 그 갈망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발걸음이 되게 합시다.
- 삶의 분주함이 갈망을 대체하지 않도록, 갈망 없는 활동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지 점검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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