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으신 예수
멜기세덱은 왕이자 제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직분과 본질을 보여주는 그림자이며, 예수께서는 의의 왕이시요 평화의 왕이시므로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하시는 분이라는 메시지입니다.
멜기세덱은 왕이요 제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1절)
히브리서 7장 1절은 멜기세덱을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기록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왕은 신적 권위와 절대 통치권을 가진 사람이었고, 제사장은 인간을 대신해 하나님께 나아가 속죄 재물을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한 시대에 엘 엘리온의 제사장이라는 말을 쓴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서, 제사장으로서, 예언자로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직분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직분을 깨닫게 됩니다.
의의 왕이신 예수님이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멜기세덱의 이름을 번역하면 첫째 의의 왕이며, 히브리어로 체덱은 의를 뜻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인데, 예레미야는 인간의 마음이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다고 말했고 칼빈은 인간의 마음을 악의 제조 공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자기 의를 나타내 믿는 자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은 자신의 의를 죄인에게 전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의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을 통해 허물과 죄를 먼저 씻어야 합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께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멜기세덱의 다른 이름 살렘은 샬롬에서 비롯되어 평강을 뜻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로 전했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시편 85편 10절은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춤한다고 말합니다. 평화의 기초는 의이므로 의롭지 못하면 참된 평화가 없고, 도피나 타협으로는 일시적 평화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위해 의의 왕을 먼저 모셔야 하며,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 가정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축복하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3절)
히브리서 7장 3절은 멜기세덱이 아비도 어미도 족보도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신적 기원을 하늘에 두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은 그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합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원하시며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십니다.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드리는 십일조 (4-6절)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행동하여 조카 롯을 구했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로 맞이하며 축복했고,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10분의 1을 드렸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보답입니다. 교회가 헌금을 강요하는 것도, 교인이 돈 이야기를 거부하는 것도 모두 잘못입니다. 우리는 돈에 대한 자유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확신 속에서 기쁨으로 헌금 생활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십시다.
-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의 보혈 앞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내려놓읍시다.
- 하나님과 먼저 평화를 누려 가정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 예수님께서 주시는 의의 축복과 평안의 축복을 누리며 그 축복 안에 머뭅시다.
-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기쁨으로 드리는 헌금 생활을 회복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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