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하나님께 바로서기 (대상 13:9~14))
하나님께 바로 서려면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인간의 선함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회복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외해야 합니다.
선한 의도로 시작했으나 멈춰 선 예배
다윗은 언약궤를 모셔 오기 위해 3만 명을 준비하고 온 이스라엘과 찬양대를 동원했습니다. 비파와 수금과 제금과 나팔이 울리는 축제요 예배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수레를 끌던 웃사가 넘어지려는 궤를 붙잡다가 그 자리에서 죽자 찬양은 멈추고 백성은 당황했으며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다윗이 잊은 것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점이고, 그 결과 자기 뜻과 방법대로 궤를 옮기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성전을 짓고 참된 예배를 드리려는 이들에게, 먼저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9-10절)
9~10절에는 웃사가 손을 뻗었다, 손을 폈다는 말이 반복됩니다. 궤를 모시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두 가지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묻지 않은 것입니다. 다윗은 지휘관과 백성의 동의는 얻었으나 정작 자신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민수기 4장 15절은 고핫 자손이 궤를 운반하되 몸이 닿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궤는 블레셋 사람들이 쓰던 방식인 새 수레에 실려 왔습니다. 웃사는 20년간 이를 당연하게 여겼겠지만 그것은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마음의 평강, 선한 동기, 성령의 인도,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지로 분별하며,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음성」이 이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인간의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소들이 날뛰자 웃사는 궤가 넘어지지 않게 붙들었으니 누가 보아도 선한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웃사가 죽은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율법대로 궤에 손을 댔고, 궤가 수레에 실려 가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으며, 자신이 잡으면 궤가 안전하리라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으신 분이며, 어떤 인간의 의도도 선하지 않고 선하신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궤를 가져오면 나라를 편안히 다스리리라는 다윗의 생각에도 교만이 있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웃사가 하나님을 도우려 했고 거룩을 붙들 수 있다고 믿었으며, 거룩은 우리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찢으심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11절)
11절에서 다윗은 화가 났고 그곳은 오늘날까지 베레스 웃사라 불립니다. 베레스는 찢으셨다는 뜻입니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다윗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은혜와 예배의 자리가 한순간에 슬픔의 자리로 바뀌었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궤를 옮긴 자신을 향한 분노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함으로 보이던 것을 드러내시고 인간적인 방법과 생각을 찢으셨습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이 나라 가운데서도 인간의 의도와 방법이 드러나고 부정한 것이 찢길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먼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선함은 없고 하나님의 거룩하심만 있을 뿐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경외함으로 나아가라 (12-14절)
12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어떻게 궤를 모셔 올 수 있을지 묻습니다. 분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어떻게 바로 설지 하나씩 알아 갔습니다. 우리의 분노도 표출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경외로 바뀌어야 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두려워 떨어 궤는 다윗성에 오지 못하고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간 머물렀습니다. 오벳에돔은 궤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위험함을 알았기에 경외함으로 궤를 모셨고, 하나님은 그 집안과 모든 것에 복을 주셨습니다. 같은 궤가 웃사에게는 죽음이, 오벳에돔에게는 복이 된 것은 궤나 하나님이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자세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일이라도 먼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합시다.
- 마음의 평강, 선한 동기, 성령의 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합시다.
- 선한 의도라 여기는 내 행동 속에 숨은 교만과 인간적인 생각을 하나님 앞에 드러냅시다.
- 분노에 머물지 말고 그 분노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경외로 바뀌도록 합시다.
- 두려움이 아닌 경외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바로 섭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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