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빌 2:5~8)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를 거짓과 죄악과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신 네 가지 이유를 알고, 그분을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 문을 여는 작은 열쇠, 신앙 고백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말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열쇠입니다. 한국 영화의 대사처럼 가장 무거운 쇠문은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로 엽니다. 우리는 노력과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문은 이 고백 하나로 열립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부활을 믿는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 (6절)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셨지만 그 기득권을 취할 것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기에 사람이 가진 권한 그대로 살아가셨습니다. 많은 이단과 사이비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피조물로 여깁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어린아이부터 예수가 피조물이라고 가르치고, 몰몬교도 예수를 창조된 존재로 봅니다. 불교나 이슬람에서도 예수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성자의 위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합니다. 그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네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 이유: 인류의 마음에 예수의 마음을 두시려고
세상 문제의 핵심은 마음에 있고, 그 마음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님께 정직하게, 사람끼리 솔직하게 사는 것이 필요하지만 상처 때문에 숨기고 감정을 바르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성경 속에 그 모습이 있습니다. 아담의 잘못된 수치심, 가인의 잘못된 인정욕구, 사울의 억압된 기억, 요나의 상한 감정, 38년 된 병자의 일그러진 자화상, 가룟 유다의 과중한 책임감입니다. 이것들이 바르게 풀리지 못하면 분노가 되고, 폭력과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고 하나님의 인정에 만족하셨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마음을 품어야 온전히 치유받습니다.
둘째 이유: 태아에게까지 미친 죄의 영향을 씻으시려고 (7절)
본문 7절은 예수님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의 모양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의 태중에 태아로 임하셨습니다. 낙태뿐 아니라 자연적으로도 태아가 죽는 일이 많은데, 성경은 죽음의 결과가 죄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은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 하고, 우리는 그 지배 아래 있던 죄인이었습니다. 이 거짓과 죄와 죽음의 영향이 태아에게까지 미칩니다. 그러나 태아로 오신 예수님은 죽는 아이까지 구원하십니다. 복중에 아이를 가진 부모는 손을 얹고 "태아로 오신 예수께서 너의 죄를 용서하신다"라고 매일 축복해야 합니다.
셋째 이유: 생과 죽음의 허무한 반복을 끊으시려고 (8절)
8절은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죽음을 보며 윤회를 상상했고, 힌두교와 불교가 이를 말합니다. 요즘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다음 생에 어떻게 안 망하는지는 답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합니다. 망한다는 것은 곧 멸망이니 내 인생을 함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생명이 되풀이되는 허무를 보여주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안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넷째 이유와 우리에게 맡겨진 증인의 사명
넷째 이유는 죽음 이후에 경험할 부활 생명의 탈출구를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에서 큰 배가 뒤집히자 소수만 구조되었듯, 전복의 위기 속에서 탈출구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니, 부활 생명만이 탈출구입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라고 선포하고 창조주, 구원자, 심판자로 고백할 때 이 은혜를 맛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예수를 증거할 사명이 남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고, 로마의 가택연금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기쁨으로 안내하는 슬픔의 길, 곧 비아 돌로로사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날마다 새기고 더 깊이 예수님을 만납시다.
- 상처받은 내 마음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내어놓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따라갑시다.
- 복중의 아이를 가진 부모는 태아에게 손을 얹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매일 축복합시다.
- "이번 생은 망했다"며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부활 생명의 탈출구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갑시다.
-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 생명, 사랑이심을 선포하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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