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전 15:9~10)

2019.10.27이재훈고린도전서 15:9~10

내가 지금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붙잡을 때 우리는 죄책감, 교만, 열등감, 완벽주의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고 담대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질문은 나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몸을 단장하지만, 영혼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되돌아보기를 꺼립니다. 살아가며 만나는 많은 문제의 원인은 바로 이 질문에 정직하게 응답하지 않으려는 데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 질문에 정직하고 담대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바울처럼 내가 지금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만이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무서운 채찍은 사람이 잠시 흉내만 내게 할 뿐, 계속해서 옳은 일을 하게 하는 힘과 동기는 주지 못합니다. 율법의 무서운 형벌도 그 힘과 동기를 일으켜 주지 못하기에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반면 은혜는 변화가 더디고 실패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옳은 일을 계속할 동기를 만들고 그 힘을 북돋아 줍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무섭게 벌하여 일하게 하지 않으셨고, 말할 수 없는 그 은혜가 바울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또한 은혜는 아무리 위대한 일을 이루어도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참된 지도자는 큰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을 증거하던 바울은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장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8절까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부활하셔서 여러 사도들과 자신에게 나타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9절과 10절에서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12절부터는 부활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논증으로 이어갑니다. 9절과 10절의 고백은 부활을 증거하는 말씀 한가운데 끼워진 샌드위치와 같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며 받은 많은 고난과 상처를 이제 하나님의 은혜의 시각으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상처와 분노는 겸손한 은혜의 고백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가장 작은 자라는 고백은 죄책감과 교만을 씻어 줍니다 (9절)

바울은 자신을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며 사도라 불릴 자격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죄책감에 묶였다면 그는 스스로 대가를 치르려 했을 것이고,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값없이 의롭다 하시며 온전히 용서하십니다. 교만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은혜 앞에 붙잡힌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씻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누구에게 속한 존재인가에 있습니다.

많이 수고해도 은혜로 했다고 고백할 때 은혜는 헛되지 않습니다 (10절)

바울은 어느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은 더 많이 수고하고 그것으로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울은 더 많이 수고하면서도 자기 가치를 드러내기보다 더 깊은 겸손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고린도후서에서 돌에 맞고 채찍에 맞았으며 수없이 죽을 뻔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일생은 그 자체로 순교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인정받으려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로 수고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거울을 보듯 정직하게 답해 봅시다.
  • 나를 죄책감, 교만, 열등감, 완벽주의에 묶어 두는 것들을 은혜의 빛 아래 내려놓읍시다.
  • 다른 사람의 칭찬과 비판에 흔들리기보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합시다.
  • 나의 수고와 헌신이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돌아봅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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