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가지 치명적인 죄[2] - 시기 (고전 3:1~8)

2019.06.30이재훈고린도전서 3:1~8

시기는 이웃을 해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무너뜨리고 하나님께 반항하게 하는 치명적인 죄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이웃의 축복을 함께 기뻐할 때 자유로워집니다.

시기는 영혼과 삶을 무너뜨리는 죄

영화 아마데우스의 실제 주인공은 모차르트를 시기한 궁정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입니다. 그는 훌륭한 음악가였지만 천재적인 모차르트와 자신을 비교하다 시기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원망하고 도전하며 자신의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도전과 반항, 분노, 저주 같은 사탄의 속성이 시기심을 통해 영혼에 들어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을 시기한 가인에게서 나왔습니다. 그 시기가 분노를 낳고 분노가 살인이 되었습니다.

성경 속 시기와 고린도 교회의 분열 (3-8절)

사울 왕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를 듣고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해 몰락했습니다(삼상 18:8-9). 아기를 두고 솔로몬 앞에 선 여인의 거짓 주장과, 예수님을 죽이려 한 유대 주도자들의 동기도 시기였고 빌라도도 이를 알았습니다(마 27:18). 고린도 교회는 열심이 있었지만 '나는 바울파, 아볼로파'라 하며 갈라진 육에 속한 모습이었습니다. 지도자의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영향력과 기득권, 욕망을 채운 것입니다. 바울은 심는 이도 물 주는 이도 아니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는 분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즐거움 없이 파괴만 하는 죄

토마스 아퀴나스는 시기를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슬퍼하고 다른 사람의 슬픔을 즐거워하는 것이라 정의했습니다. 조셉 엡스타인은 모든 치명적인 죄 가운데 시기만 즐거움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죄에는 순간적이나마 쾌락이 있지만 시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파괴만 합니다. 시기는 노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는 사람들의 시기심을 부추겨 필요 이상을 원하게 합니다. 친구들의 더 좋은 집을 부러워해 자기 집을 내놓고, 신문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전화했더니 바로 자기 집이었다는 이야기가 그 모습입니다.

평등을 왜곡하는 시기, 그 뿌리는 반항

살리에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는 신부의 말에 맞서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시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평등에 대한 왜곡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환경에 차이를 두시되 그 차이 속에서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십니다. 남의 좋은 것은 나도 누리고 남의 고난은 나는 피하려 한다면 평등이 아닙니다. 사회주의는 그런 왜곡된 평등을 제도로 표현해 시기심에 호소하는 사상이며, 사람을 끌어올리기보다 끌어내립니다.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것은 시기가 아니고, 내 삶이 초라해 보여 남의 불행을 바라고 행동할 때 죄가 됩니다. 그 뿌리는 사람마다 차이를 두신 하나님께 대한 반항과 분노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함께 기뻐하라

시기를 이기려면 첫째, 작은 시기심부터 죄로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분노와 두려움으로 나타나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둘째, 비교의식을 버리고 비교 대상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임한 기름 부음을 기뻐하지 못했지만, 모세는 엘닷과 메닷이 예언하자 막으려는 여호수아에게 모든 백성이 선지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민 11:29). 시기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웃의 축복을 축하하며 불행을 함께 슬퍼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작은 시기심까지 숨기지 말고 죄로 인정하며 회개합시다.
  • 남의 좋은 일에 기쁘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의 불행에 은근히 즐거워하지 않는지 돌아봅시다.
  •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기준으로 삼읍시다.
  •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 주신 축복을 함께 축하하고 그들의 불행을 함께 슬퍼합시다.
  • 시기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 충만으로 우리 공동체에 시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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