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 (요 4:19~24)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참된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아버지이신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을 알고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재난의 때, 나는 참된 예배자인가
지금은 우리가 참된 예배자로 서 있는지 시험받는 기간입니다. 모여 드리는 예배만이 아니라 흩어져 살아갈 때에도 삶 자체가 예배로 드려지고 있는지를 묻는 때입니다. 이 기간에 예배와 상관없이 산 성도라면 모여 예배할 때에도 참된 예배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사야서에서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책망하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모이는 것 자체, 많이 모일수록 더 참된 예배인지도 냉철하게 물어야 합니다.
장소 중심에서 새 시대로의 전환 (19-22절)
신약성경에 예배라는 헬라어 단어가 13번 나오는데 그중 10번이 이 본문에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자기 삶을 훤히 아시자 두려워 예배 장소 논쟁으로 화제를 바꿨지만, 그 목마름의 해결은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 있었으므로 주제를 오히려 강화한 셈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모세오경만 인정해 그리심산에, 유대인은 구약을 받아들여 예루살렘에 집착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셨고,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으로 어디서든 하나님을 만나는 패러다임 전환이 왔습니다. 구약에서 장소를 강조하신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리시기 위해서였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려 주십니다.
스스로를 알리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이방 종교에 섬기는 대상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개 답을 못하고 모이는 절차와 방법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신 분이며, 성경은 그 계시의 증거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일곱 번 '나는 ~이다'라고 선언하셨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가우따마 붓다는 스스로 신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사람들이 신으로 받든다고 짚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은 거듭남, 십자가, 영과 진리의 예배 세 가지이며, 십자가 복음으로 거듭난 영혼은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하고 그런 영혼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이심을 알고 드리는 예배 (23-24절)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셨고, 아버지는 우리 존재의 근원이며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분입니다. J.B. 필립스의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가 말하듯, 마음속 경찰관이나 어린 시절의 아버지 같은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적극적 무신론자들 대부분에게 아버지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로, 돌아왔기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하고 기다리신 아버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코로나 기간에 예배당에 가지 못해 쑥스러운 분도, 죄책감을 넘어 이 풍성한 사랑의 아버지께 나아가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알고 드리는 예배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그리심산이냐 예루살렘이냐, 예배당이냐 가정이냐는 본질이 아닙니다. 십계명이 형상을 금한 것도 이 때문인데, 저급한 종교일수록 아이콘이 많고 중세 교회도 그러했습니다. 인간은 영을 먼저 지으시고 육을 덧붙여 주신 존재인데, 타락은 영보다 육이 앞서게 된 것이며 모든 중독의 근본은 육의 만족입니다. 영이 육을 다스리는 삶은 예배로만 가능하고, 육체의 죽음이 존재의 끝이 아닌 것도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94:9처럼 하나님은 듣고 말씀하고 행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영은 성령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며, 이 둘을 떠나면 영과 진리를 떠난 중세 교회처럼 됩니다. 예배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고 그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20세기 영국 교회가 형식과 건물에 치우쳐 성령의 임재를 잃어 간다고 한탄했습니다. 영상예배를 부정하는 쪽도, 편하다며 평생 영상으로 하자는 쪽도 극단이며, 본질은 어디서 예배하느냐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나아가느냐입니다. 존 파이퍼가 『열방이 기뻐하게 하라』에서 말한 대로 선교는 예배가 없기에 존재하고 궁극의 목표는 예배이니, 참된 예배자는 예배 없는 곳에 예배를 심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모이는 때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을 때에도 나는 참된 예배자인지 스스로 물어봅시다.
- 죄책감과 육신의 아버지의 그림자를 넘어, 이미 용서하고 기다리시는 아버지께 나아갑시다.
- 영이 육을 다스리는 삶을 위해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 살아갑시다.
-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 어디서 예배하느냐보다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나아가고 있는지를 본질로 삼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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