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 (창 17:15~21)

2017.12.17이재훈창세기 17:15~21

크리스마스는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날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역사 속에 오신 사건입니다. 약속을 따라 오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도 새 생명이 태어나고, 우리는 활짝 웃으며 이 성탄을 맞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존재하기 시작한 분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를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가 인류에 큰 공헌을 하여 기념하는 날로 이해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출생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으며 베들레헴을 신성시하지도 않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예언으로,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잉태 소식으로, 요한복음은 태초에 계신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장의 '계셨다'는 시제는 예수님이 영원히 존재하신 분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자신도 '나는 태어났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누렸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는 예수님의 선언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날을 보고 기뻐했다고 말씀하셨고, 유대인들은 나이도 안 되셨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으니 그들은 예수님이 늙어 보인다고 말한 셈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유대인들은 흥분하여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며 나는 생명이라는 일관된 자기 선언 속에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인 약속과 사라의 웃음 (15-21절)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아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종 하갈을 통해 자손을 얻는 불신앙의 방법을 택했고, 그 결과 이스마엘이 태어나 중동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흔아홉 살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전능한 하나님임을 말씀하시고, 아브라함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고 다시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속으로 웃었고, 하나님은 그 웃음을 보시고 사라를 통해 이삭이 태어난다고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체험한 하나님의 약속은 순종을 낳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처음에는 의심과 비웃음으로 반응했지만, 약속대로 아들이 태어나자 그 웃음은 불신이 씻겨 내리는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에 나중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세우시는 영원한 언약은 이삭이 아니라 그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다윗과 맺은 영원한 나라 역시 솔로몬 왕국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약속의 자녀 예수님, 우리 안에 태어나는 새 생명

이삭은 약속을 따라 오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아담부터 아브라함, 모세, 다윗까지 구약의 인물들과 맺으신 언약은 영원한 약속을 행하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것입니다. 동정녀에게서 메시아가 나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몸에서도 생명을 태어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을 때 우리 안에도 사라의 몸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듯 영원한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보내심을 받은 사건이며, 우리는 활짝 웃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분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합시다.
  • 우리의 상황이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의심의 웃음을 돌이킵시다.
  • 하나님의 약속을 체험한 아브라함처럼 어려운 순종의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잡고 순종합시다.
  • 예수님의 오심을 기대하고 기뻐하며 우리 안에 태어난 영원한 새 생명을 누리며 살아갑시다.
  • 이번 성탄에 입을 활짝 벌리고 기쁨으로 웃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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