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타고 입성하신 예수그리스도

2010.09.17하용조요한복음 12:9-16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겸손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 걸음은 죽음을 향한 행진이었고,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자신을 드리신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진실은 감출 수 없고 영향력을 가집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살아난 나사로 때문에 곤혹스러워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나사로는 눈앞에 살아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이는 옳고 그름보다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계획된 살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은폐되지 않고 드러나며, 진실을 붙든 사람은 순교와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나사로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증거물이었습니다. 진실은 말없이도 영향력을 주어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에 붙들려 그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영적 목마름 속에서 나온 호산나의 외침

사람들은 예수님과 나사로를 보려고 예루살렘으로 나아왔습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목마름이 있고, 교회와 설교와 종교 행사가 많아도 진리가 없으면 영혼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무리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고 외쳤습니다. 호산나는 오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며 시편 118편에 담긴 메시아를 기다리는 찬송이었습니다. 종려나무는 사랑과 존경과 환영을 표현하던 것으로, 요한계시록 7장에서도 흰옷 입은 성도들이 종려가지를 들고 어린 양 앞에서 찬양합니다.

겸손하신 왕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박하고 우스꽝스러울 만큼 초라한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자기 옷을 벗어 길에 깔았습니다. 승리한 장군처럼 기마병과 깃발과 화려한 함성이 있는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스가랴 9장 9절은 메시아가 겸손하여 나귀를 타고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의롭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면서도 누릴 수 있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자는 권력자가 아니라 겸손하신 왕이셨습니다.

이 입성은 죽으러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입성이 죽음으로 가는 행진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이 응답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뒤에 죽을 것을 안다면 우리의 욕심과 거짓과 다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

입성의 때는 유월절이었고, 해마다 명절이면 수많은 어린 양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요세푸스가 계산한 명절의 어린 양의 수를 생각하면 예루살렘은 피로 물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어린 양이 피를 흘려 죄를 사하는 바로 그날에 맞추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그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9장은 짐승의 피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단번에 자신을 드려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고 증언합니다. 나귀 새끼를 타신 입성은 스스로 재물이 되신 길이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진실을 은폐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를 붙듭시다.
  • 내 성공이 아니라 나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삶을 살아갑시다.
  •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과 거짓을 내려놓고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갑시다.
  • 교회 행사나 많은 설교에 머물지 말고 영혼의 갈급함을 예수 그리스도께 가져갑시다.
  •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리신 어린 양 예수님을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응답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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