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거룩은 악을 미워합니다 (신 7:16~26)
가나안 원주민에 대한 진멸 명령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자 사랑의 표현입니다. 거룩은 악을 철저히 미워하고 분리되는 것이며, 그 결단으로 영적 승리를 누립니다.
진멸 명령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16-24절)
가나안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 그 이름까지 하늘 아래서 없애라는 명령은 비윤리적인 하나님이라는 오해를 낳습니다. 그러나 근거는 창세기 15장 16절,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차지 않았다는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400년을 참으셨고, 죄악이 가득 찬 뒤에야 노아 시대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동은 그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제국주의적 정복이 아니라 공의의 집행입니다.
멸망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 영적 수술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고통스러워하시며 슬퍼하십니다. 악을 고집했기에 심판이 주어진 것입니다.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나쁜 세포는 도려내야 온몸이 죽지 않는 것처럼, 전 인류를 무너뜨릴 악의 전염성에 대해 하나님은 심판으로 영적 수술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하나님이 악하셔서가 아니라 선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주어진 것입니다.
우상에 입힌 은과 금을 탐하지 마십시오 (25-26절)
하나님은 우상을 불태우고 그 위에 입힌 은과 금을 탐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헛된 우상일수록 화려하게 치장되고, 사람들이 정말 탐하는 것은 우상이 약속하는 은과 금입니다. 그 탐심의 본질은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마음, 곧 하나님 대신 은과 금을 의지하려는 마음입니다. 십자가는 화려한 은금이 아니라 소박한 나무 십자가이며, 자기 부인과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신 십자가입니다. 이 탐심은 올무가 되어 멸망으로 이끕니다.
믿음은 사단과 맞서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성경에는 전쟁 이야기가 계속 나오며, 이는 영적 전쟁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존 버니언의 《거룩한 전쟁》에서 반역자 디아볼로스는 맨소울 사람들 편인 것처럼 위장해 유혹합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에게도 그렇게 접근했습니다. 사단에게는 세상을 다스릴 권세가 없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한순간에 쓸어버리지 않으시는 것은 거기에 얽힌 수많은 영혼이 함께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와 같습니다. 자유의지는 폭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싸우겠다고 선언합니다.
거룩은 악을 미워하며 찢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라 하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악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중립은 없고 악을 미워하든지 악 편에 서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전도서 3장의 찢을 때와 꿰맬 때에 비추면,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택하신 일은 세상에서 찢으신 것이며 열방의 복의 통로로 꿰매시기 위함입니다. 거룩이란 분리되는 것이고, 악에서 철저히 찢어져야 하나님이 꿰매시는 사역에 쓰임받습니다. 귀한 고문서가 망가지면 안 되듯 인간을 귀하게 보실수록 죄를 미워하시니, 악에 대한 미움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권세로 결단하고 승리하십시오
교통을 멈춰 세우는 경찰관에게 나라가 준 권세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영적 권세가 있어 사단의 무리가 우리를 넘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자유의지로 결단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악에 맞서 싸우기로 결단하며 주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할 때 날마다 영적 승리가 주어집니다. 우리의 결심은 약하지만 그 약한 결심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을 철저히 미워하고 멀리하기로 결단합시다.
- 은과 금으로 상징되는 탐심, 곧 하나님 없이 살려는 마음을 경계합시다.
- 사단이 우리 편인 것처럼 속삭이는 유혹을 분별하고 맞서 싸웁시다.
- 세상에서 구별되어 찢어짐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읍시다.
-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영적 권세를 믿고 날마다 사용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