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 (욘4:1-11)
하나님은 니느웨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까지 아끼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머리의 지식을 넘어 그 마음을 품고 선교에 참여해야 합니다.
머리의 지식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이며 교회의 유일한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느냐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30cm가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입니다. 머리로 아는 하나님과 마음으로 체험하는 하나님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도 선교도 지식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알았기에 도망했습니다 (1-3절)
요나는 몹시 기분이 상해 화를 내며 하나님께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라고 기도합니다. 그 이유는 니느웨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은혜롭고 자비로우셔서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머리로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고 하는 불순종이 아니라 잘 알기에 하는 고차원적인 불순종으로 다시스를 향했습니다. 머리의 지식이 가슴에 살아 있지 못한 요나의 모순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니느웨까지 품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들과 그 세력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니느웨는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로 악독하기로 이름난 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도시에 40일의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선교는 이처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도시와 사람들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데서 시작됩니다.
분노를 묻는 하나님의 첫 질문 (4절)
하나님은 요나에게 내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요나를 사랑하시기에 던지신 질문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분노의 감정에도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은 사람은 그 분노를 사람에게 쏟아붓게 됩니다. 요나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우리의 분노가 하나님의 의로 치료되고 회복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박 넝쿨에 기뻐하고 넝쿨에 화내는 요나 (6-9절)
하나님은 박 넝쿨을 준비하여 요나에게 그늘을 주셨고, 요나는 그 넝쿨로 심히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싫어하면서 자신의 편안을 주는 넝쿨에는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벌레를 보내 넝쿨을 갉아먹게 하셨고 뜨거운 동풍을 불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죽겠다며 다시 분노합니다. 하나님은 그 넝쿨을 네가 만든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이것으로 화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 (10-11절)
하나님은 가꾸지도 기르지도 않은 넝쿨도 아끼셨다면서, 오른손과 왼손도 구별하지 못하는 12만 명의 니느웨 사람들과 많은 가축을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요나서는 이 질문으로 끝나며 요나의 대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질문은 요나에게 향하셨고 지금 우리에게도 던지시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작은 냉수 하나도 아끼면서 열방의 잃어버린 영혼을 아끼는 마음이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헌신과 참여의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머리의 지식이 우리 마음에 살아 있도록 말씀을 묵상합시다.
-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내 안에 미워하는 사람이 회개하고 은혜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지 살핍시다.
- 나의 분노가 하나님께 대한 분노는 아닌지 살피고 그 분노가 하나님의 의로 치료되기를 구합시다.
- 작은 것도 아끼듯 열방의 잃어버린 영혼을 아끼는 마음으로 선교에 참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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