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영상] 승리의 때가 오고 있다 (계 18:20~24)

2025.05.25이재훈요한계시록 18:20~24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악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이자 구원의 사건입니다. 무너질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성도의 탄원에 응답하신 마지막 심판

요한계시록은 세상의 악으로 고통받는 성도들의 탄원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6장에서 성도들은 어느 때까지 피값을 갚아주지 않으시겠느냐고 부르짖었고, 7장 이후 하나님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을 세 번 반복하며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이는 경고로 여러 번 주어지지만 결국 악에 대한 완전하고 공의로운 심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15장과 16장은 그 마지막 심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되고 의로운 심판, 두 번째 출애굽

16장은 마지막 심판 때에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오랜 경고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고,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의 길을 여셨으며, 심판 자체가 아니라 구원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재앙은 출애굽의 열 재앙을 닮았고, 홍해와 노아의 홍수, 세례의 물이 심판이자 구원의 물이었듯 마지막 심판도 두 번째 출애굽입니다. 그 목적은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처럼 모든 나라가 주께 경배하는 데 있습니다.

큰 창녀와 정결한 신부, 두 갈래 인생

17장은 심판의 대상을 큰 창녀로 그립니다. 그녀는 짐승을 타고 성도들의 피에 취했지만,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를 따르는 이들이 이길 것이라고 17장 14절은 약속합니다. 구약은 우상 숭배를 영적 음행으로 표현했고, 사탄은 성적 타락을 이용해 사람들을 거짓으로 이끕니다. 이 큰 창녀는 19장 이후의 순결한 신부와 대조됩니다. 우리는 큰 창녀의 편에 설 것인지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될 것인지 택해야 하며, 악은 생명을 살리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무너집니다.

로마는 바벨론,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18장의 큰 도성 바벨론은 요한계시록 시대의 로마를 가리킵니다. 17장 9절의 일곱 산은 일곱 언덕 위에 세워진 로마와 맞고, 로마의 축제 이름 세프티몸티움도 일곱 언덕을 뜻합니다. 로마가 바벨론으로 불린 것은 바벨론처럼 타락을 퍼뜨렸고,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게 하며 따르지 않는 이들을 죽인 우상 숭배의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와 번영은 산불이나 안개처럼 한순간에 사라지고, 그때의 슬픔은 이미 늦은 슬픔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강대국은 바벨론의 길을 걷다 멸망합니다.

바벨론에서 나와 참된 도성을 즐거워하라

하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18장 4절처럼 그 여자에게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물리적으로 떠나라는 뜻이 아니라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 허무주의 같은 바벨론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에서 떠나 하나님만 예배하라는 뜻입니다. 둘째, 20절처럼 그 도성으로 인해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남의 심판을 고소해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로마가 무너졌을 때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을 써서 로마는 하나님의 도성이 아니라 바벨론이었다고 변증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할렐루야로 끝나며, 히브리서 13장 13-14절처럼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갈망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무너질 바벨론의 사고방식과 세계관, 삶의 방식에서 나와 하나님만 예배하는 삶을 삽시다
  •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 허무주의 같은 세상의 화려한 유혹에 소망을 두지 맙시다
  • 큰 창녀의 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서 순결한 예배를 드립시다
  • 심판 앞에서 늦은 슬픔을 겪지 않도록 먼저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옵시다
  •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을 갈망하며 즐거워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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