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주의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고후 12:1~10)
바울은 지극히 큰 계시와 함께 지극히 아픈 육체의 가시를 받았고, 그 연약함 속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러 "주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고 고백했습니다.
큰 계시와 아픈 가시를 함께 받은 바울 (1-7절)
두란노의 「빛과 소금」은 쇼그렌 증후군, 어셔 증후군,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같은 희귀질환을 앓는 분들의 신앙 고백을 실었습니다. 이분들은 육체의 가시를 통해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에 감사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도 셋째 하늘을 경험한 큰 계시와 함께 육체의 가시를 받았고, 7절에서 그것을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계시만 있었다면 교만해졌을 것이고 가시만 있었다면 절망했을 것입니다. 저라면 솔직히 가시가 아니라 계시를 택했겠지만, 바울은 하나를 고르라면 가시를 택하겠다고 합니다. 같은 병도 믿음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절망이 되기도 하고 감사가 되기도 합니다.
바울이 자랑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입니다 (5절)
바울은 14년 동안 천국 체험에 침묵했고, 말할 때도 '내가 아는 한 사람'이라며 제3자처럼 표현했습니다. 자랑해서 얻는 영적 유익보다 잃는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라면 다음 날 책을 쓰고 유튜브 채널을 열었을 것이고, 그 속에서 교만이 솟고 이야기가 각색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 체험을 복음의 고난을 이기는 힘으로 썼습니다. 그가 고린도후서 10-13장에서 자랑을 한 것은 대적자들이 자신을 포장하고 예루살렘 사도의 추천서를 내세워 바울의 권위를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자랑의 핵심은 율법 지식도 하늘 체험도 아니라, 가시로 인해 은혜가 흘러넘친 자신의 연약함이었습니다.
고통이 없다면 사람은 더 악해집니다
필립 얀시는 고통을 '아무도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라 했습니다. 고통은 희귀질환이나 부도처럼 큰 일에만 오지 않고, 남에게는 사소해 보여도 그 사람에게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남편을 죽인 인디언들에게 돌아가 16년 동안 선교한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에서 고통을 '원치 않는 것을 갖거나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 정의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기준이나 강도가 아니라 그 고통으로 무엇을 경험하고 주님께 어떻게 나아가느냐입니다. 우리 속마음은 고통만 없기를 바라지만, 맬컴 머거리지는 고통이 사라진 세상은 무시무시할 것이라 했습니다. 교만을 바로잡을 것이 사라져 인간이 더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신 주님 (9-10절)
바울이 가시가 떠나도록 세 번 간구했을 때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시를 낫게 하지 않고 두셔서 바울을 약하게 하셨기에, 큰 계시가 왜곡되지 않았고 바울은 겸손해졌으며 연약함 속에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바울이 은혜가 족하다고 고백하게 한 것은 큰 계시가 아니라 아프게 했던 가시였습니다. 기적이 많다고 은혜가 족하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급의 기적을 본 이스라엘은 우상을 만들고 불순종했고, 그들을 하나님께 나가게 한 것은 기근과 광야와 침략의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본 사람들도 예수님을 이용하려 했을 뿐입니다.
약점이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40년 교육을 받았지만, 그 결과는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지극히 연약한 자로 지내야 했고, 왕궁에서 생긴 교만이 씻겨 내려간 80세에야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집안 출신이고, 기근이 들자 애굽에서 아내를 누이라 속였으며,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어울리는 사람은 의롭고 자녀 많은 욥 같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누구도 약점과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쓰지 않으실 것이라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약함을 참는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문다는 것은 로마서 8장처럼 부활하신 성령이 머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가시를 두셨을까요? 그 능력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약함을 참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최고의 능력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대속제물로 내려놓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왕으로 삼으려 할 때는 떠나가셨지만 십자가의 고통은 참으셨습니다. 계시 체험은 바울을 강하게 할 수 있었으나, 가시는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의존하게 했습니다. 고통은 주님의 은혜보다 크지 못하며, 고통이 사라져야 은혜가 족한 것이 아니라 가시와 함께도 족하다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고통이 사라져야 은혜가 족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라지지 않는 육체의 가시 속에서도 주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고 고백합시다.
- 나의 가시를 절망으로 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해석하여 감사와 겸손의 제목으로 삼읍시다.
- 고통의 크기를 따지기보다 그 고통을 통해 무엇을 경험하고 주님께 어떻게 나아가는지 돌아봅시다.
- 나의 약점과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쓰지 않으실 것이라 말하지 말고, 그것이 은혜의 통로가 됨을 믿읍시다.
- 자신의 강함이나 체험을 자랑하기보다 약함을 자랑하며, 그 약함 속에 머무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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