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구유에 누이신 메시야 (눅 2:1~7)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역사의 한가운데, 정해진 때와 장소에 준비하여 보내셨고, 가장 누추한 구유에 누이심으로 누구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분이 되셨으며,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실 여지를 내어 드립시다.
하나님이 때를 준비하여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1-2절)
하나님은 메시야를 아무렇게나 보내지 않으시고 미리 예언하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셔서 보내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1-2절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일 때 호적 등록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아우구스투스가 다스린 시기는 로마의 평화 시대로, 길이 닦이고 헬라 문화가 퍼져 복음이 빠르게 전해질 수 있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 구약이 헬라어로 번역되어 이방인들도 메시야를 기다리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이 역사를 주관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메시야를 준비하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중심에 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장소와 혈통까지 준비하셨습니다 (4-5절)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에 살았지만, 다윗의 혈통을 따라 호적 등록을 위해 베들레헴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로마 황제의 명령을 사용하셔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하신 섭리입니다. 미가서 5장 2절은 이미 수백 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분이 나오리라고 예언했습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은 '빵집'이라는 뜻이어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과 잘 맞습니다. 또 룻과 보아스, 다윗 같은 인물들의 역사도 모두 메시야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메시야는 가장 누추한 곳에 오셨습니다 (6-7절)
마리아가 해산할 때 여관에는 빈방이 없었고, 아기 예수님은 천으로 싸여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베들레헴의 가장 작고 누추한 마을, 그 마을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였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 사람들이 처음 드린 것은 동물의 먹이통이었고, 마지막으로 드린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보다 구유가 예수님이 오신 참된 모습입니다.
구유에 누이심으로 우리를 가까이 부르십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왕궁이 아닌 동물의 구유에 누이신 것은 놀라운 겸손입니다. 첫째, 누구나 가까이 갈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소외된 사람 외에는 누구도 제외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가장 야비하고 짐승 같은 사람이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올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가난하게 오셨습니다. 빌린 구유와 빌린 무덤처럼 자기 것이 없으셨지만, 그 가난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이 말하는 대로, 그분은 부유하셨으나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실 여지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찾아오셨을 때 머물 방이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구유보다 더 더럽고 지저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 더럽고 추한 마음에 오시려고 오셨습니다. 방이라는 말은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여지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 시간, 관계, 대화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실 여지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교회 역시 예배당은 있어도 예수님이 들어오실 여지가 없는 교회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머무실 방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 생각과 시간과 관계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실 여지를 내어 드립시다.
-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 가까이 할 수 있는 믿음을 붙듭시다.
- 화려함보다 예수님이 오신 낮은 자리를 기억하며 성탄을 지냅시다.
-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부유하게 섬깁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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