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인생의 짐을 지는 새로운 방식 (마 11:28~30)
예수님은 인생의 짐을 없애 주시는 대신 그 짐을 감당할 쉼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동행할 때 짐은 쉽고 가벼워집니다.
모든 짐진 자를 초청하시는 예수님 (28절)
본문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과 그들을 초청하시는 예수님, 두 인격이 나타납니다. 이 초청은 당시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초청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도 짐진 모든 이를 자신에게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절대적인 초청은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그분 안에 있기에 가능합니다. 수고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지는 짐이고, 무거운 짐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는 짐입니다.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 우는 사람이 많고, 수많은 중독은 짐에 눌린 영혼이 찾는 탈출구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미로여서 짐이 더 무거워집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오라"는 초청은 교훈이나 예식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께 직접 나아오라는 인격적인 초청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갈 때는 누구의 중보도 필요 없습니다. 중세 가톨릭은 성인의 기도와 교회와 사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를 왜곡했지만, 예수님은 직접 오라고 하셨습니다. 또 이 초청은 지금보다 나아진 뒤에 오라는 말씀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는 말씀입니다. 병이 다 나은 뒤에 의사를 찾아가는 환자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내 인생은 끝이다"라고 판결하지만, 성경 지식이나 봉사 헌신이 없어도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짐을 없애지 않고 쉬게 하시는 약속
예수님의 약속은 짐을 제거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쉬게 하리라"입니다. 이 땅에서는 죽을 때까지 인생의 짐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질 수밖에 없는 짐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이길 수 있게 하는 쉼을 주십니다. 중독이나 취미는 고통의 감각을 마비시킬 뿐 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 쉼의 첫째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우리를 누르는 것은 육체의 피로가 아니라 마음의 죄의 무게이고, 이는 휴식으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내게로 오라"는 십자가로 오라는 초청이며, 짐을 스스로 만들어 온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양심의 평화와 예수님의 임재
둘째 쉼은 양심의 평화입니다. 죄로 오염된 양심은 정당한 지적뿐 아니라 "너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부당한 공격도 합니다. 반대로 양심의 소리를 외면해 잠재우는 것은 거짓 평화입니다. 비싼 종을 훔친 도둑이 종소리가 나자 귀를 막고 "아, 평안하다" 하며 달렸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오늘 많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십자가의 은총으로 누리는 평화입니다. 셋째 쉼은 예수님의 임재 그 자체입니다. 어떤 인격을 만나느냐에 따라 쉼도 되고 짐도 되는데, 예수님을 만나면 얼마나 큰 쉼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동행하라 (29-30절)
예수님은 짐을 벗겨 주시는 대신 짐을 감당할 장비인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멍에는 두 마리 소가 어깨를 연결해 밭을 갈고 짐을 끄는 도구로, 보통 힘센 소와 어린 소를 함께 매어 갈등과 조정을 거치며 서로 배우고 힘을 모읍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그분의 걸음과 속도와 방향에 맞춰 동행하는 삶입니다. 로버트 보이드의 소책자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처럼, 마음의 벽장을 열려 하실 때 "여기는 곤란합니다" 하면 예수님은 거주자로만 계십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의 멍에는 율법주의의 무거운 멍에였지만, 예수님의 멍에는 오직 믿음을 요구하는 복음의 멍에입니다. 죄의 무게는 복음에 나타난 은혜의 무게만이 이깁니다.
온유와 겸손을 배우며 짐을 새롭게 지기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배울 목표를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짐은 온유가 없어 분노가 일고 겸손이 없어 미움과 질투가 생기는 우리 마음의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반응을 보고 온유와 겸손을 배웁니다. 신앙생활이 오래될수록 온유와 겸손이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삶은 개성을 말살하지 않고 자기다움을 꽃피웁니다. 인생의 짐을 새롭게 지는 방식은 예수님의 방법과 마음과 태도로 그 짐을 함께 지는 것입니다. 사무엘 러더포드는 수많은 이가 예수님의 품에 기대었어도 당신이 기댈 공간은 여전히 많다고 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있는 모습 그대로 안고 아무 중보자 없이 예수님께 직접 나아갑시다.
- 짐을 잊으려 중독이나 감각의 마비에 기대지 말고, 십자가에서 얻는 죄로부터의 자유와 양심의 평화를 구합시다.
- 예수님을 거주자로만 두지 말고 마음의 모든 곳에 주인이 되시도록 내어드립시다.
- 율법주의의 멍에가 아닌 믿음의 복음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과 동행합시다.
-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내 짐을 예수님의 마음과 태도로 지는 사람이 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누르면 그 장면부터 재생합니다. 자동으로 받아쓴 원문이라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