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2010.09.17하용조요한1서 1:1-4

구원의 확신은 태초부터 계셨고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실체이신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을 때 생깁니다. 그 확신에서 전도, 사귐, 기쁨의 열매가 맺힙니다.

구원의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1절)

요한일서는 확신에 찬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루는 책입니다. 요한복음이 예수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를, 요한서신이 예수를 어떻게 확신할 것인가를 말한다면,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는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 생기는 갈등과 회의입니다. 뿌리 깊은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신앙은 도중에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분을 만나고 대화하고 교제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 안에 불도장처럼 찍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의 태초부터 있는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과 요한복음 1장 1절과 함께 읽어야 뜻이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분이며, 본질과 기원에 있어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듯 예수님도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역사 안에 계셨지만 역사를 초월하시며, 세상의 구원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과 달리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참된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으로 존재하시며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형식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설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므로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담긴 생명은 자연계의 생명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그분의 살과 피를 통해 그 생명이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죽음이 떠나고 절망이 사라지며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의 생명을 만난 사람은 거듭나고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실체이십니다 (1절)

요한일서 1장 1절은 우리가 듣고 보고 만진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관념이 아니라 실체이십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믿지만, 예수님의 숨결을 느끼고 음성을 들은 사람은 사랑하고 용서하며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아픔과 죄의식을 이해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고 치료하고 새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12년 혈류증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듯, 우리도 지금 그분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에서 구원의 확신이 생기고, 그 확신으로 고난과 시험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2절)

요한일서 1장 2절은 생명이 나타났고 그것을 보고 증거한다고 말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은 침묵할 수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베드로, 요한, 안드레, 빌립, 나다나엘은 예수를 보자마자 그물과 직업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남편 문제로 고민하던 여인은 자기를 저주하던 동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은 모두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았는지 묻는 것은 전도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있는지 묻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참된 사귐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3절)

요한일서 1장 3절은 우리가 본 것을 전하는 목적이 사귐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 사귐은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며, 그 사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생깁니다. 함께 밥을 먹거나 한자리에 앉는다고 사귐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서로 이름도 모르고 약점을 감춘 채 군중 속의 고독처럼 살아갑니다. 진정한 사귐은 약점을 나누고 서로를 감싸며, 비판 대신 용서와 봉사로 세워집니다. 명예나 이해관계를 목적으로 한 봉사는 사귐을 망칩니다. 순수한 동기로 말씀을 나누고 서로를 섬길 때 천국을 경험하는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구원의 확신은 기쁨의 열매를 맺습니다 (4절)

요한일서 1장 4절은 이것을 쓰는 목적이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평안과 그리스도의 영광과 찬양이 함께 있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고,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기쁨을 가졌습니다. 이 기쁨은 사귐이라는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열매입니다. 형제를 말씀으로 가르치고 그의 아픔을 나누며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순수하고 감격에 넘치는 기쁨이 구원의 열매이며, 이 기쁨을 가진 사람만이 남을 돕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실체이심을 믿고 고백합시다.
  • 예수님을 말씀으로 영접하고 그분과 대화하며 교제하는 삶을 살펴봅시다.
  • 만난 예수님을 전하고 증거하는 일에 뜨거운 마음을 회복합시다.
  • 구역 모임에서 약점을 나누고 서로 용서하며 순수한 사귐을 세워 갑시다.
  • 형제를 말씀으로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며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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