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맹세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
예수님은 맹세를 금하시며 말의 진실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단순하고 진실해야 하며, 말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맹세는 말에 확신이 없는 데서 나온다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을 때 하늘이나 땅, 성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맹세합니다. 이는 자기 말에 스스로 확신이 없고 다른 사람이 믿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이 화려하고 문법적으로 맞는지가 아니라 그 말에 진실이 있는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맹세에 대해 하신 말씀은 결국 언어의 진실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실수와 과장과 허위가 많아지기 쉽고, 야고보서 3장은 혀를 길들이기 어려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맹세의 말씀을 악용했다 (33-37절)
구약의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를 지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헛되이 맹세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하늘, 땅, 예루살렘, 성전, 금, 제단 등 맹세의 형태를 나누어 편리하게 악용했습니다. 외형은 율법에 맞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멀어진 태도였고, 종교의 탈을 쓴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법을 특권의 도구로 삼고 교회 정치를 교권의 수단으로 쓰는 모습과 같습니다.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예수님이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맹세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악용하고 죄와 이기적 동기를 합리화하는 태도를 막으시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도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윗, 바울은 중요하고 결정적인 때에 맹세했습니다. 세속적인 맹세는 결국 인간의 타락한 마음과 말의 진실성 결여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약속을 믿기 어려운 현실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옳다, 아니다로 충분하다 (37절)
예수님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은 단순하고 진실하며 과장이나 덧붙임이 없습니다. 화려한 언변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성입니다. 과장된 통계나 자기 기준의 거짓말, 욕과 비꼬는 말, 불리하면 잊어버리는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언어가 아닙니다. 또한 옳다고 말했으면 그 옳음에 책임을 지고, 비판했으면 비판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말에 책임지는 삶이 진실한 언어의 길이다
언어의 폭력도 말의 진실성을 해칩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말과 행동이 일치한 예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치가가 공약을 지키듯, 부부가 서약을 지키듯, 사업가가 정직하듯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 격려, 용서, 사랑, 위로, 영생을 전했습니다. 말이 곧 행동이었던 예수님처럼 우리의 말도 그런 말이 되어야 하며, 우리 마음의 거짓을 몰아내고 진실을 구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옳다는 것은 옳다고, 아니라는 것은 아니라고 단순하고 진실하게 말합시다.
- 과장된 숫자와 허세 섞인 말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훈련을 합시다.
- 한 말과 약속에 책임을 지고, 비판한 만큼 비판을 받을 각오로 살아갑시다.
- 결혼 서약과 공약처럼 지킬 것을 말했다면 끝까지 지킵시다.
- 우리 마음의 거짓을 몰아내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격려와 용서와 사랑이 담긴 말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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