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 비유 (마13:24-30)

2013.01.27이재훈마태복음 13:24-30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뽑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내를 따라 가라지가 알곡으로 변하기를 기다리며 사랑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원수가 뿌린 가라지와 내버려 두라는 주인 (24-30절)

농부가 좋은 씨를 밭에 뿌렸는데 사람들이 잠든 사이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고 갔습니다.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힐 무렵에야 종들은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들이 뽑아버리자고 하자 주인은 뜻밖에도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잠을 자서 생긴 일을 탓하는 말이 아니라, 원수가 얼마나 교활하고 모두가 잠든 때에도 악한 일을 열심히 행하는지를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가 던지는 질문은 주인이 왜 바로 뽑으라 하지 않고 내버려 두라고 했는가입니다.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전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악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믿는 이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임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두 시점 사이에 살고 있고, 이 비유는 그 중간 상태를 보여줍니다. 씨앗이 땅에 심기고도 추수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나라를 그렇게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며, 매일의 삶 속에서 찾아가야 보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가를 능력은 사람에게 없습니다 (29절)

주인이 뽑지 말라고 한 첫째 이유는 종들에게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29절에서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라지로 번역된 말은 독보리이며, 겉으로는 밀과 비슷하고 뿌리가 서로 엉켜 있어 밀을 상하게 하지 않고는 뽑을 수 없습니다. 중세 교회는 제도 안과 밖으로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었고, 교리의 순수성을 내세워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잘못된 사상은 가려내야 하지만, 사람을 가라지라 하여 제거할 권세는 예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도 가라지가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 알곡이라 여기는 사람 안에도 악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 속 알곡이 화학적으로 가라지가 되지는 않지만, 사람의 마음은 변화무쌍해서 알곡이 쓰러지고 가라지가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데 악이 함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 안에 가라지가 섞인 알곡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악을 내버려 두시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엉켜 있는 뿌리를 함께 뽑지 않으시려고 알곡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도 알곡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인내

우리 모두는 처음에 가라지였고, 예수님은 가라지 같은 인생을 알곡으로 바꾸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예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조롱하는 자들 때문에 주님이 지금도 겪으시는 고난을 가리킵니다. 주인이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가라지를 내버려 두시는 것은 알곡을 사랑하고 마지막 한 영혼까지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기간은 선교의 기간이며, 가라지가 복음의 증거자들을 통해 알곡으로 바뀌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라지를 뽑을까를 묻기보다, 그들이 변화되기를 기다리며 사랑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가라지를 뽑아버릴까요 묻기보다,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함께 품읍시다.
  • 우리 안의 가라지를 성령의 불로 태워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 주변에 아직 알곡이 되지 못한 영혼들을 사랑으로 품고 복음을 전합시다.
  • 교회 안의 연약한 지체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섬깁시다.
  •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선교의 명령에 순종하며 나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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