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아버지의 손 (요 10:28~30)
육신의 아버지가 어떠했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은혜가 우리의 상처를 넘어서게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손에 붙들린 인생이며, 그 손은 그림자로도 우리를 지키십니다.
아버지의 상처가 만든 무신론
미국에서는 2015년 기준으로 2천만 명의 아이들이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살고 있고, 감옥에 간 청소년의 85%와 청소년 자살의 63%가 그런 가정에서 나왔습니다. 폴 비츠의 『무신론의 심리학』은 무신론자들의 심리 밑에 아버지의 부재나 상처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니체는 다섯 살에 병약한 아버지를 잃고 그 이미지를 하나님께 적용해 '신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아버지와 갈등했고, 쇼펜하우어는 열일곱 살에 아버지의 자살을 겪었으며,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신은 인간이 만든 투사일 뿐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도리어 그들이 왜 하나님을 거부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좋은 아버지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통로입니다
반대로 믿음의 사람들은 아버지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파스칼의 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판사직을 내려놓고 재혼도 하지 않은 채 아들을 집에서 직접 가르쳤고, 식탁에서 화약의 폭발 원리와 물이 펌프를 타고 오르는 원리를 나누었습니다. 본회퍼의 아버지도 바쁜 중에 자녀들과 식사하며 존중과 애정으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는 드물고, 대부분은 아버지의 부재나 대물림된 상처를 겪습니다. 그래도 복음은 희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면 육신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뛰어넘어 온전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관계로의 초대
아바는 '아빠'에 해당하는 아람어이고, 요아킴 예레미아스에 따르면 당시 유대 문서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부른 예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그렇게 부르셨기에 유대인들은 충격을 받았고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15-16절처럼 성령이 양자의 영을 부어 우리를 그 관계로 초대하십니다. 구원은 죄 용서와 진노 면제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선물입니다.
아버지를 처음 부른 가수의 눈물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에 와서 부모를 찾는 것은 한결같이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입니다. 그 물음은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야 풀립니다. 일본의 통기타 가수 안토니오 고 씨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어 아버지라는 단어를 써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흔이 넘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를 처음 부르는 순간, 평생의 아픔과 상처가 씻겨 내려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예수님 중심의 삶도 아바 아버지께로 모이지 않으면 신앙이 파편화됩니다.
아버지의 손에 붙들린 인생 (28-30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라고 기도하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평생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해 사셨고, 생명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손이 아들을 십자가에 넘기셨고 그 손이 다시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30절에서 예수님의 손과 아버지의 손은 하나이며, 그 손이 우리를 붙잡아 영원한 생명을 절대 취소되지 않게 지키십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할 때도 그 손을 알았습니다(시 3:5-6). 모세는 하나님의 손이 짧으냐는 책망을 들었으나(민 11:23), 창조하시고 붙드시는 아버지의 손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사 41:10).
손의 그림자도 아버지의 보호입니다
이사야 49장 2절처럼 아버지의 손에는 때로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그 그늘은 우리를 더 큰 위험에서 숨기시려는 보호입니다.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도 영원한 멸망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은 꺼져 가는 심지를 손으로 막아 지키십니다. 해외 사업을 억울하게 정리해야 했던 한 성도는 코로나 재난이 닥치자 그때 닫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루터는 성에 숨어 지내는 동안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부모와 가족 관계는 모두 우리를 아바 아버지와의 관계로 초대하기 위한 것이므로, 좋든 나쁘든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이제 아버지의 거친 손을 돌보는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육신의 아버지가 어떠했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은혜를 누립시다.
-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에 머물지 말고 예수님 안에 거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관계로 들어갑시다.
- 성령의 인도와 예수님 중심의 삶을 아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로 모아 신앙이 파편화되지 않게 합시다.
- 예수님의 손과 아버지의 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 인생의 그늘을 만나도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 아니라 더 큰 위험에서 보호하시는 손의 그림자임을 믿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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