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피할 곳이 필요한 이들에게 (수 20:1~9)
도피성은 실수한 사람을 보호하면서도 대가를 요구하는 제도로, 사랑과 정의가 함께하는 하나님의 정의를 보여 줍니다. 이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이며, 우리의 피난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기계적 분배가 아닌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이 정의롭게 분배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툼을 없애려고 제비뽑기가 기본 원칙이 되었지만, 지파 인원수대로 면적을 나누는 기계적 분배를 정의라고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요단 동편에 정착하려는 두 지파의 뜻과, 가장 정복하기 힘든 헤브론 산지를 맡겠다는 갈렙의 제안은 받아들여졌습니다. 반면 땅이 좁다며 더 달라고 한 요셉 지파에게는 스스로 개척하라고 도전하셨습니다. 헌신은 존중하고 나태와 거짓으로 더 얻으려는 것은 책망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실수한 사람을 보호하는 도피성 (1-3절)
가나안 분배의 절정에서 하나님은 도피성 제도를 명령하셨습니다. 뜻하지 않게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가 피의 복수를 하려는 사람에게서 보호받게 하는 제도입니다. 성문 앞에서 장로들이 사정을 듣고 입성을 허락하면, 이후 재판으로 의도성을 가려 고의라면 성 밖으로 추방해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요단 동서편에 세 성씩 고르게 두어 하루 안에 도망할 수 있게 하고 안내판까지 세웠습니다. 폭력과 복수가 난무하던 후기 청동기 시대에 이는 긍휼과 공의가 함께하는 사회를 가르치신 지혜였습니다.
사랑과 정의를 함께 붙드는 정의
출애굽기 21장, 민수기 35장, 신명기 19장에도 도피성이 나옵니다. 신명기에는 나무를 베다 도끼 머리가 날아가 이웃이 죽은 예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정의에는 실수에 대한 용납과 관용이 포함되어 있어, 사랑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고 정의 없는 사랑도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파와 정의파는 한 면만 붙잡고 싸웁니다. 정의를 외치려면 내 안에 긍휼이 있는지, 사랑을 외치려면 그것이 정의로운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잘못한 사람의 좋은 점을 한 사람씩 말해 주는 어느 인디언 마을의 재판은 사랑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지혜를 보여 줍니다.
복수심을 제한하고 대가를 요구하심
복수는 언제나 받은 피해보다 지나치게 마련이어서, 하나님은 복수가 악순환되지 않도록 이 제도를 세우셨습니다. 눈에는 눈이라는 말씀도 개인의 복수가 아니라 공적 기관의 처벌을 뜻합니다. 군부대 사격장 사고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가 실수로 쏜 청년의 처벌을 원치 않아 수사를 중지해 달라고 한 일은 이런 긍휼의 아름다운 예입니다. 그러나 실수라도 대가는 분명합니다. 도피성에 들어온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구금 상태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습니다.
대제사장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를 자유케 하심
도피성에 머문 사람은 대제사장과 공동 운명체였고, 대제사장이 죽을 때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값을 완전히 치르고 죄책에서 자유케 하시는 구원을 모형으로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를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대신 죄값을 치러 완전한 용서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도피성은 실수한 사람만 보호했지만 그리스도께는 어떤 죄인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 오는 자는 결코 내쫓기지 않고 정죄함이 없으므로, 삶의 위기와 억울함 속에서 우리의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사랑을 말할 때 정의를, 정의를 말할 때 내 안에 긍휼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 나태하지 않고 헌신으로 일하며 노력 없이 더 얻으려는 마음을 버립시다.
- 실수한 사람을 용납하고 지나친 복수심을 내려놓읍시다.
- 죄값을 완전히 치르신 십자가의 용서를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
- 삶의 위기와 억울한 상황에서 우리의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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